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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예수님께서 코로나 시대에 사셨더라면…”

이승민(대건 안드레아·대전가톨릭대 신학대학원 2학년·대전교구 천안 구룡동본당)
입력일 2020-10-05 수정일 2020-10-06 발행일 2020-10-11 제 321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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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소회를 하였다. 최근에는 방에서 이 사태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을까?” 나의 고민은 ‘예수님’이란 단어와 함께 끝마쳤다.

사실 고민을 시작하면서 어떤 답을 찾기를 바랐다. 그러나 답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예수님을 그저 바라보았다. “예수님께서 코로나 시대에 사셨더라면….” 고민은 이내 끝났고 예수님 모습이 그려졌다.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본당 밖으로 나가셨다. ‘길 위의 예수님 모습’이 그려졌다.

오늘날 정부는 그리고 대다수 시민들은 코로나 시대의 연대는 ‘흩어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일었다. “흩어지다.” 참 아이러니 하다. 그러나 이 말이 맞다. 어떤 개신교 목사는 자기 교회 대문에다 이런 글을 붙였다. “코로나로 세상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안다면, 오늘날 사랑의 실천은 이웃을 위해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목사의 말처럼 오늘날 연대는 ‘모이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의 고민 속 예수님께서는 흩어진 삶의 자리로 나가셨다. 방에서 외로이 지내는 이들 문을 두드리셨다. 두려움과 좌절 속에 빠진 소상공인들을 찾아 나섰고, 자연 재해로 고통받는 이재민들을 위해 봉사하러 가셨다. 예수님 모습에서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모습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실천을 못하는 이들, 그저 방 안에만 앉아 있는 이들을 만나러 가셨다.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하며 지낼 때 느끼는 고립감, 두려움, 절망감, 나태함, 외로움, 답답함 등을 함께 하려고 가셨다. 용기가 꺾여 있는 이들 눈동자를 마주치고 그들 하소연을 주의 깊게 들으러 나가셨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와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도맡는 ‘지자체 공무원’, 홍수 재해로 피해 받았던 이들을 위해 봉사를 나온 ‘자원 봉사자’들이었다. 나에게 이들은 ‘코로나 시대의 예수님’이었다. 나는 이들 모습 속에서 예수님 모습을 보았고 그리스도인 모습을 보았다.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큰 희망의 바이러스로 남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교회와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교회는 야전병원이라고. 그렇다. 교회는 전쟁 같은 이 코로나 시대와 환경오염으로 병든 이 지구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야전병원이 되어 코로나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웃이 찾아오는 작은 음압병동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당은 먼 미래 영혼이 병든 이들이 찾아오는 병원이다. 또한 그리스도인 모두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주는 절망과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돌봐주는 의사이자 간호사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이 끔찍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더라도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희망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거리로 나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가시는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분명히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길 위의 예수님’, 야전병원 의사다.

이승민(대건 안드레아·대전가톨릭대 신학대학원 2학년·대전교구 천안 구룡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