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아직은 젊은, 회심자가 보내는 주말편지 / 이수

이수(가브리엘라) 시인
입력일 2020-10-05 수정일 2020-10-06 발행일 2020-10-11 제 321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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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홍자색 촘촘한 꽃빛을 끌어당기는 여름날 저녁 공기와, 귀착지를 모르는 길 위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가로등불처럼, 삶의 허기가 붙든 에움길에도 실안개인 듯 일렁이는 그늘이 있습니다.

시간의 낱장을 뜯어내며 우리가 애써 살아오는 동안, 춤을 추듯 제자리에서 맴을 돌거나, 믿음·사랑·꿈·기쁨 같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에 단지 기대기만 하던 시절이 그대에게도 내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숱한 망설임과 더 치열한 생각과 훨씬 많은 포기가 필요한 노고와 고통의 단련장이 세상에는 여기저기 있었으니까요.

그러했으므로, 맑은 지향이 끊겨버린, 목적이 없었던 삶과 삶의 경계를 건너뛰며 살아내느라 육체보다 영혼이 더 힘겨운 밤을 보내기도 했겠지요.

그대와 내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삶, 마냥 기다리다가 놓쳐버린 삶, 살아보기는 했으나 중간에 포기해 버린 삶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소유하고자 애를 쓴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울한 오후의 빗소리처럼, 혹은 먼 산등성이에 쌓인 잔설처럼 슬픔과 기쁨은 매번 한목에 몰려와 ‘견뎌내는 이들’의 적막을 떠밀어댑니다.

“그만 놓고 돌아서서 나를 따르라.”

모든 방황과 모든 무지의 길에서 그만 돌아서라고, 우리 각자의 손에 쥐여 주시던 주님의 막대와 지팡이.

예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빛 부신 사랑과 평화가 이끄는 길의 표징입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연민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따스하게 감싸 안으며 그 사랑의 한 부분으로 우리의 삶을 변모시킬 때, 그 기쁨을 지키기 위해서 어지간한 슬픔과 괴로움 따위는 두려움 없이 껴안고 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 여인의, 한 시인의 삶 위에 포개진 그리스도인의 삶.

그 삶의 준혹한 과제들 사이에 평화가 이슬처럼 맺혀 가끔은 온점이 되는, 짧지만 행복한 쉼-평화로운 휴지부가 있습니다.

진실로 어둠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기억은 모든 지상적인 거리를 메꾸며 정화시키는 힘을 지닙니다. 빛과 그늘의 그 눈물기 어린 조화미는 어찌 보면, 제 생명의 길과 하나가 된 나무의 상승하고 하강하는 힘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한자리에서 오래 참으며 서 있는, 항구한 사랑.

자신의 삶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신앙과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해 괴로움과 고독의 잔을 들어 올려 벌컥 주님의 포도주를 마시고 나면, 총체적으로 드러날 우리 삶의 36.5℃ 온기에는 그윽한 사랑의 향기가 은총처럼 보태질 것입니다.

하루하루 삶의 배후에서 아예 어둠이 돼버린, 한결 깊어진 고통의 얼룩들도 우리 스스로 의혹과 불신을 거두어 버린다면, 사는 날 내내 허물을 가려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며 고이 매만져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긴 인생 여정을 함께 걷는 벗이여.

우리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 강생하신 말씀을 가슴에 품고, 영원을 향해 쉼 없이 걷는 무명의 순례자들임을 잊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그대 영혼에게 한때 눈이 부셨던, 젊은 날의 사랑과 지덕을 선물로 보냅니다.

봄빛을 머금고 피어나던 장미꽃 울타리의 기억과, 그 살에 박혔던 의혹과 기쁨도 모두 돌려 드립니다.

영원을 세우시는 주님의 어좌 가까이에서 그대와 내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무구한 눈으로 가림막 없이, 좋으신 성삼 하느님을 뵈올 수 있기를 바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수(가브리엘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