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보스코젤라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09-22 수정일 2020-09-22 발행일 2020-09-27 제 321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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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 사랑 담은 아이스크림 세상 사는 맛까지 달콤해집니다

살레시오회 운영 ‘보스코젤라또’ 이주배경 청소년 위해 수익금 사용 
서울·부산서 청년·청소년 직업교육도
하늘병원에서 매장 지원해준 덕에 임대료 걱정 없이 좋은 재료만 사용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여름철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인기 있는 디저트다. 게다가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지방 함유율이 낮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젤라토는 시원함에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까지 더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아이스크림이다. 이런 달콤한 젤라토에 수사들이 젤라토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듬뿍 담아 파는 가게가 있다.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보스코젤라또’(대표 김평안 신부)다.

■ 돈 보스코의 선물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317 하늘병원 1층. ‘Bosco Gelato’(보스코젤라또) 젤라토 가게임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간판이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군침을 불러일으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원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이 점원의 복장이 어쩐지 낯익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복장인 로만 칼라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원의 본업은 수도자, 바로 수사이자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점원, 아니 보스코젤라또 대표인 김평안 신부가 몸담은 살레시오회 창립자가 요한 보스코 성인이기 때문이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고향과 젤라토의 고향이 같다는 생각에 둘의 연관성을 찾아 봤지만, 사실 성인과 젤라토에 특별한 관계는 없다. 다만 보스코젤라또 메뉴를 보니 이곳에서 파는 젤라토가 돈 보스코(보스코 신부)의 선물이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였다. 보스코젤라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메뉴인 ‘보스코 젤라또·보스코 쉐이크’가 있어서다. 이 메뉴들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젤라또와 쉐이크를 일반 가격에서 20%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메뉴다.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신부는 “애들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요”라며 웃었다.

뿐만 아니라 가게 모든 수익금은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해 사용된다. 가게 설립 목적 자체가 청소년을 향한 사랑으로 전 생애를 바친 요한 보스코 성인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레시오회는 그동안 학교, 기술학교, 수련원, 그룹홈 등 다양한 환경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보살피고 가르치는 등 사랑을 주는 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발맞춰 청소년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고민해 왔다. 보스코젤라또는 그런 고민 속에서 시작한 새로운 시도다. 사고 팔며 살아가는 방식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근간으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직접 만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 보스코젤라또와 부산 이태석신부기념관 지하 카페에 자리한 보스코젤라또가 탄생했다.

보스코젤라또는 청소년을 만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청소년·청년들이 사회와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공간을 꿈꾼다. 실제로 보스코젤라또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인 이주민 청년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또 부산 보스코젤라또는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직업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보스코젤라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김평안 신부. 김 신부는 보스코젤라또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청소년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함께 걷도록 돕는다.

■ 맛있는 젤라토의 비밀

손님이 방문하자 김 신부 손이 분주해졌다. 젤라토는 일반 아이스크림과 달리 그릇에 담아 낼 때마다 영하 12도 온도에서 젤라토를 반죽해야 한다. 그래야 점성이 생겨 젤라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이렇게 고된 반죽을 하다 보니 김 신부 손은 매일 붓고 손목이며 근육이며 통증에 시달려 파스와 찜질 없이는 하루를 마칠 수 없을 정도다.

김 신부는 “저도 운동 깨나 했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이렇게 해야 맛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누기 위해서라면 상관없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스코젤라또의 젤라토는 다른 젤라토보다도 맛있다는 평을 받는다. 김 신부 정성도 정성이지만, 좋은 재료를 사용하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젤라토 맛의 핵심이 되는 우유는 분유나 가공된 우유가 아닌 신선한 원유 그대로를 사용한다. 설탕도 비정제설탕을 쓰고, 재료도 천연재료로 엄선된 유기농만을 고집한다. 제철 농산물만을 사용하다 보니 철에 따라 젤라토 메뉴가 달라진다. 그 밖의 첨가물은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젤라토 가게에 비하면 조금 비싼 편이긴 하지만, 사실 재료의 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금액이다.

비결은 ‘함께 걷기’다. 좋은 뜻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걸어 준 이가 있었기에 맛있는 젤라토도 가능했다. 살레시오회의 좋은 뜻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늘병원 조성연(요셉) 원장이 병원 1층 매장을 무상으로 제공했기에 보스코젤라또를 설립할 수 있었고, 임대료가 없으니 가장 좋은 재료로만 젤라토를 만들었음에도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하늘병원 1층에 자리한 보스코젤라또.

청소년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할인 메뉴 보스코젤라또.

매장 안에 있는 요한보스코 성인상.

■ 함께 걷기

보스코젤라또의 함께 걷기는 젤라토의 맛만이 아니라 세상사는 맛도 좋게 만들고 있다.

보스코젤라또는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하는 가톨릭농민들의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해 농촌살리기에 동참하고, 보스코젤라또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친환경 먹거리를 전하고 있다. 게다가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포장 시에도 생분해가 가능한 녹말이나 옥수수전분 성분의 수저와 빨대를 활용해 환경과도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로사리아 맘 집반찬’ 사업에도 힘을 보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간식으로 젤라토를 후원하는 활동도 하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도 동참해 캠페인 확산에 앞장서는 ‘평화의 가게’ 1호점이 되기도 했다. 보스코젤라또는 이주민들과 사회의 소통을 위한 행사로 오픈 103일째가 되는 10월 26일에는 매장 내에서 이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물건을 판매하는 수공예품 시장도 열 예정이다. 103일은 103위 한국순교성인을 기억하는 의미로 정했다.

김 신부는 “아직 시작 단계고 팬데믹 영향으로 수익은 거의 없지만, 매장을 후원해 주신 조 원장님을 보면서 어려울수록 내어놓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교회라는 생각을 했다”며 “손님이 늘어 수익이 많아진다면 이주민이나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더 고용해 노동의 대가를 얻으며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나아가 2호점, 3호점을 만든다면 더 많은 분들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는 희망도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