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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순교와 화해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09-22 수정일 2020-09-23 발행일 2020-09-27 제 321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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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앙 수호는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명분 가운데 하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9월 1일 연설에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그는 언론, 직업, 교육 등의 ‘자유 이념’(the idea of freedom)을 강조한다. 트루먼은 자유 가운데 첫째는 종교자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전쟁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서울 수복 때 보여 준 맥아더 장군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1950년 9월 29일 수도 서울 이양식에서 맥아더는 UN군 장병들에게 “자비하신 신의 섭리와 은총으로, 우리 군대는 한국의 유서 깊은 이 도시를 해방시켰다”고 연설한다. 이어 맥아더는 이승만에게 헌법적인 책임을 다하라고 격려하면서, 모두에게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요청했다. 미 국무부는 맥아더의 정치적 활동에 반대했지만, 그는 이러한 ‘의식’(儀式)을 통해서 전쟁의 정당성에 관한 메시지를 서구 세계에 보내려 한 것이다.

신앙인들이 전쟁 희생자를 순교자로 인식한 점도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천주교회보’(가톨릭신문 전신)는 전쟁 발발 이후 발간된 첫 신문에서 ‘양을 위해 희생된 거룩한 목자들-순직(殉職)의 주교 신부와 전재(戰災) 교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이 글은 전쟁 초기에 희생된 성직자들을 소개하는데 ‘피 뿌려 가르치신 그 정신 받뜨자!’라며 순교정신을 본받을 것을 강하게 호소한다.

전쟁 이전부터 벌어진 북한지역에서의 박해 경험, 그리고 전쟁 초기부터 공산군에 의해 다수 성직자가 희생된 것은 가톨릭교회가 전쟁에서 순교담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교회와 신자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한 목자(牧者)들 순교영성을 기리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박해한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를 강화하는 담론이 형성됐던 것이다.

그러나 순교에 관한 현대 신학적 논의는 순교가 적대로 이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 세르지오 탄자렐라(Sergio Tanzarella)는 순교가 “증오나 원한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평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순교자들은 “악의 모든 정당화를 꺾을 수 있는 행위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 가장 참된 비폭력의 촉진자”며, 순교 핵심은 “박해자의 악의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 행위의 자유”라는 것이다.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이 희생된 한국전쟁은 분명 우리에게 무거운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 무죄한 이들의 죽음이 ‘박해자’를 증오하는 마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는 순교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와 연결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는 한국천주교회가 진정한 십자가 화해를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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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