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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생명을 사랑합시다 (10) 안락사 문제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9-15 수정일 2020-09-16 발행일 2020-09-20 제 321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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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당하는 것 아닌 준비하며 맞이하는 것
생명 빼앗는 고의적 살인 행위
그릇된 동정심과 효율성 이유로  죽음 앞당길 권리 주어진다면 생명경시 풍토 조장 우려 있어
신체·심리·정서·영적 돌봄 통해 죽음 잘 준비하도록 도와야
호스피스·말기 돌봄 의무화해야

2018년 5월,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자기 몸에 연결된 튜브 밸브를 열어 약물을 주입했다. 104세라는 “많은 나이로 삶의 질이 악화했고 행복하지 않다”며 스스로 몸에 약물을 넣어 숨진 것이다. 그런 그의 죽음에 당시 한국에서도 ‘안락사’ 합법화 논란이 일었다.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해 7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발 저희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암세포가 퍼져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안락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해 달라는 의견이었다. 안락사, 과연 허용해야 할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안락사는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그 자체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죽음을 야기시키는 작위 또는 부작위”(「생명의 복음」 65항)로, “그 어떤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 행위”(「새 의료인 헌장」 168항)이기 때문이다. 실제 안락사는 독극물을 주사하거나 약물을 치사량 이상 넣는 ‘작위’ 또는 기본적인 영양·수분 등을 공급하지 않는 ‘부작위’로 이뤄진다. 작위에 의한 안락사나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 모두 생명을 빼앗는 고의적인 살해 행위다.

이러한 안락사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 의료진을 직·간접적인 살인자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은 목숨을 끊는 ‘자살자’, 가족과 이웃, 특히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히포크라테스 선서) 다짐한 의사들은 ‘자살 방조자’, 때로는 실질적인 가해자가 돼야 한다. 이에 이탈리아 전 국가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마리아 루이사 디 피에트로 교수도 책 「생명 윤리, 교육 그리고 가정」에서 “개인은 ‘죽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자신의 죽음을 앞당길 권리란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죽일’ 의무를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안락사는 생명이나 삶이 무의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안락사는 “그릇된 동정심”과 “큰 부담을 주는 비용을 피하자는 실용주의적인 동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으로, “기형아들이나 중증 장애인들, 지체 부자유인들, 노인들, 특히 그들이 자립 능력이 없거나 임종에 가까운 병을 앓을 때, 그들을 제거하자는 제안”이(「생명의 복음」 15항)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효율성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태도” 탓으로, 사회는 이들을 “지나치게 짐스러운 일”(「생명의 복음」 64항)로 여기게 되고, 안락사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족이나 사회에 “짐으로 떠넘기지 말라는 은밀한 요구”를 하게 된다는 의미다.(「생명윤리의 이해 2」)

때문에 사람이 죽도록 돕는 게 아니라 죽어 가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이 안락사를 생각하지 않고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여정에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유혜숙(안나) 교수는 논문 ‘안락사, ‘삶의 길이’와 ‘삶의 질’ 사이에서 고통에 대한 두려움, 안락사’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 말기 돌봄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안락사를 대신할 방법은 “총체적 돌봄”이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고통을 덜어 줘, 죽음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편안하고 존엄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심리·정서·정신·영적으로 돌봐야 하고, 환자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그 가족도 돌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별히 유 교수는 “장기간 병시중에 지친 가족들과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책과 적절한 의료 보험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원장 엘리오 스그레치아 추기경 역시 저서 「생명윤리의 이해 2」에서 “죽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요청하는 것은 ‘다르게’ 살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라며 “그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때로는 그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기 환자를 홀로 남겨두지 말라”고 권고하며 “환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체험하기만 해도 각 환자들에게서 우울증과 통증을 견디는 놀라운 능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락사란?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 ‘eu’(좋은)와 ‘thanatos’(죽음)를 합한 말로, 어원적으로 ‘좋은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고통을 제거할 목적으로 그 본성에서나 의도에서 죽음을 유발하는 행위나 부작위’를 의미한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