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예수쟁이’를 싫어했던 우리 어머니 이야기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입력일 2020-09-15 수정일 2020-09-16 발행일 2020-09-20 제 321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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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평생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천주교나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신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예수 꼬랑댕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머니는 불교와 무교 등 여러 가지가 조금씩 혼재된 종교관을 갖고 계셨다. 가족들을 포함해 우리 어머니를 아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머니의 정체성 중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을 싫어하는 분’이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어머니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왜 유독 그리스도교만 저토록 배척하시는지” 알고 싶어졌다. 나도 세례를 받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주위 친척 아주머니들을 상대로 취재를 해 본 결과 거기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다.

나의 외갓집, 즉 어머니 친정의 큰조카 며느리가 이단 그리스도교에 빠졌고 그 뒤부터 집안 생활을 매우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어디까지나 어머니 주장이다) 친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친정 조카들을 아끼는 마음도 컸던 어머니였던지라 조카며느리에 대한 원망은 자연스레 ‘예수 꼬랑댕이들’ 전체로 번졌다는 게 친척 아주머니들의 전언이었다.

세월은 한참 흘러, 어머니는 말년에 경기도 죽전의 한 요양원에 입원해 계셨다. 당시 나는 주일 오전의 교중미사를 마치면 그 길로 차를 몰아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걸 일과로 삼았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미국 연수중에 세례를 받고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예수 꼬랑댕이’가 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 때였다. 또 아들이 일요일마다 당신을 뵈러 오는 건 좋은데, 당신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부터 먼저 만나고 온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성당 나가는 일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삼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에게 공연히 싫어하는 이야기를 해드려서 자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어머니를 만나는 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을 느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머니가 나에게 “야이야, 성당 갔다 왔나?”하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어머니는 내가 찾아가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성당을 다녀왔는지’ 가끔 물어보셨다.

그럴 때, 어머니의 표정이 예전과 전혀 달랐다. 평생 ‘예수 꼬랑댕이’ 말만 꺼내면 적의 등등했던 그 표정이 아니었다. 편안하고 겸손하고, 또 자비롭기까지 했다.

나는 어머니의 심중에 뭔가 큰 변화가 왔음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에 대해 평생의 태도와 달리 매우 우호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뒤늦게 세례를 받은 뒤 점차 마음에 간직하게 된 몇 가지 계획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너무나 싫어하는 어머니가 세례를 받도록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을 뿐,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런데,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결행’ 마음을 굳혔다. 어머니를 만나러 간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성당에서 세례 받으실래요?”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치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어머니는 운신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례 행사를 하려면 신부님이나 대모님이 멀리 죽전의 요양원까지 오셔야하는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 존경하는 인천교구의 호인수 신부님과 서울신문의 임영숙 선배가 자청하다시피 선뜻 응하셨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는 요양원 병실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례를 받고 ‘예수 꼬랑댕이’가 되셨다. 세례명은 마리아로 정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영전에서 서울대교구의 허영엽 신부님 등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많은 수녀님들과 신자 형제자매들이 연도를 바쳤다. 선산에서 장례를 지낼 때엔 세례 후 몸에 지니셨던 묵주 등 성물도 함께 모셨다.

그런데 요즘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어머니가 정말로 예수님을 달리 생각하신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아들이 믿었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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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