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65)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곳, 교회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
입력일 2020-09-08 수정일 2020-09-08 발행일 2020-09-13 제 3211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오랜 박해에도 신앙 지켜낸 일본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란 장소가 아니라 존재요, 활동 모임보다 비대면 요구되는 때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

21세기 그리스도인이 초대교회 사도들과 순교자들 후손인 것처럼, 현재 일본 그리스도인도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 곳곳에 숨어있던 그리스도인과 순교자 후손들이다.

이는 현대 신앙인이 일본인이든 아니든, 가톨릭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고 주님을 찬양해 온 교회는 박해를 견뎌왔고, 이는 최근까지도 이어져왔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할아버지는 순교자였는데, 나가사키에 있는 가톨릭 구역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 부모와 형제, 고모, 삼촌, 사촌형제, 조카들 모두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오랜 박해 기간 동안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 건물도, 성직자도, 종교도, 미사도, 종교 기관도 없었다. 물론 교구도 없었고, 일본 내 혹은 해외교회와의 접촉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서로밖에 없었고 전수받은 신앙을 힘써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다음 세대에 이 신앙을 전수했다. 이들은 가난했으며 억압받았고 끝없는 위험 속에 살았지만, 기도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있는 힘껏 도왔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야말로 일본 그리스도교회 황금기를 살았던 것이다.

이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란 장소가 아니라 존재 그리고 활동 그 자체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은 오늘날 이러한 사실을 배우거나 다시 배울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돼 왔던 것보다는 한 건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상징되는 활동에 충실해왔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로 장식된 건물 안에 있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가이다.

전 세계에서 교회 문을 다시 열어 그리스도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이들은 전염성이 아주 높은 질병에 맞서 그리스도교가 할 일은 질병 전문가 조언에 따라 이웃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매주 특정한 장소에 모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도왔는지 아닌지를 나중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분명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따로 떨어져 한적한 곳으로 가서 모든 것을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을 나누실 때, 예배 장소는 중요치 않으며,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이 여인은 예수께 합당한 예배를 위한 장소가 어디인지, 그리짐산의 사원인지 아니면 예루살렘 성전인지를 물었다. 예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둘 다 아니다’였다.

이 경우, 어디에서나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교회 건물이 필요할까? 필요치 않을 수도 있고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모였다.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작아서 특별한 건물이 필요하지 않았고, 이런 교회 건물을 짓기에는 너무나 가난했다. 이후 점차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자 이들을 수용할 수 있게 집을 고쳤다. 시리아 두라 에우로포스에 가장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있다. 여기서 발견된 프레스코화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관련 예술품인데 미국 예일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시간이 흘러 점차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커지자, 전례를 위한 건물을 찾거나 짓기 시작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개의 통로가 있는 양식은 예전 회관(basilica)을 교회로 맞게 고치면서 가져오게 됐고, 이후 교회 건축 모델이 됐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우리 사도직을 확인받고 양성하며 어려움에 부딪치고 위안을 받는 교회 건물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사도직이 더 중요하다. 사도직 없이는 교회 모임은 무의미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리 각자에게 기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도직은 특정한 건물이나 모임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과 주일 모임, 모두가 모여 함께 하는 기도, 찬양은 종교 활동에 수반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교 본질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다. 교회 안에서 활동은 하느님과 우리 관계를 향한 우리 헌신과 예배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 관계를 말한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전염 위험 때문에 교회 건물이 쓸모없어졌고 대규모 모임도 불가해 졌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신앙 본질에 집중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이는 기도와 봉사이며 주님에 대한 믿음이다. 가능하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전례에 참례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도 고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소수가 모여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빵을 쪼개며 신앙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바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박해받던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