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도둑같이 올 날을 위한 준비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09-08 수정일 2020-09-08 발행일 2020-09-13 제 321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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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과 북한 문제는 풀기 어렵다. 통일 방안은 생각 외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고,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과 투여해야 하는 자원의 질량도 각 선택지마다 상이하다. 현실적 여건에 맞춰 가장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결정하기까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예멘처럼 통일 이후 내전으로 치달아 통일 이전보다 못한 상황이 된 사례는 통일 자체보다 어떤 통일인가, 어떻게 이뤄야 할 평화인가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통일에 대한 비관적 여론이 점증하지만, 이 현안이 한국사회의 최종 과제라는 측면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총론에 적극 동의한다. 통일 이후 커질 내수 시장이나 북한의 자원 활용을 통한 경제적 성장 외에도 양극화, 이념논쟁,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등 북한과의 처절한 체제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는 본질적인 해법이 바로 통일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각론으로 파고든다면 준비되지 않은 통일로 겪어야 할 갈등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 역시 수긍한다. 정치적으로 남북 간 통일이 극적 타결돼도 우리가 상상하는 남북 주민이 자유롭게 오가고 융화될 통일의 모습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생각 외로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보건 영역이다.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는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말라리아나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전염병 감염 사례가 보고된다.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질병은 바람과 공기를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한 결핵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전염성 질병에 취약한 북한의 보건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두 체제가 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실현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처럼 휴전선을 일거에 허물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바라는 통일의 모습을 저해하는 것은 이념적 갈등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르는 셈법이 아니라 이렇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이 말썽을 부려도 인도주의적 교류협력을 지속하고, 북한 주민의 영양 상태와 관련된 식량 그리고 북한에 보건의료인력과 의료장비, 의약품 등을 대가 없이 지원해야 할 까닭이 명확해진다.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 군사, 안보 영역에 치중된 것과 비교했을 때, 장기적으로 남북한 주민 개개인의 건강한 삶과 관련된 보건 분야 통일기반 조성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을뿐더러 때론 정쟁에 동원되기도 한다.

통일보다 중요한 것은 설령 통일이 멀다 해도 준비가 잘 된 통일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일 테다. 통일을 원한다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를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데살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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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