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에우제니오 주교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김의태 신부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0-09-08 수정일 2020-09-08 발행일 2020-09-13 제 321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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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듣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그 쓰나미 같은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전 세계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며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기도 중에 주님께 여쭈어본다. 주님! 당신의 뜻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나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금의 역경을 나름 나만의 퍼즐로 맞추기 위해 조금은 억지로(?) ‘코로나의 역설’이라는 유행어에서 그 힌트를 찾으려 했다. 국내외 이동 제한 때문에 학교가 휴업하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 일상생활은 위축되었지만 전 세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해졌다. 매년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던 대한민국도 올해는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힌트는 올해 여름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사라졌다. 여름에 내린 극심한 장마를 보니, 기후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지구가 아주 아파 있었다. 인류가 이젠 과거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실 집에 눌러앉아 TV를 볼 때만 해도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내 곁에 있던 사람이 이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자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볼리비아 알토 교구 교구장이시며 자기 교구를 위한 기도와 후원을 도모하기 위해 작년 9월 수원교구를 방문하신 이탈리아 출신 에우제니오 스카르펠리니(Eugenio Scarpellini) 주교님이 올해 7월 25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하늘나라로 가셨다. 충격적이었다.

주교님께서 수원교구에 오셨을 때 나는 며칠간 통역을 맡았다. 옆에 붙어 다니며 이것저것 설명해 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주교님에게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향기를 느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시는 모습, 거침없는 입담과 개방적인 마인드, 매일 볼리비아 TV에 출연하셔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신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선교 정신, 오래된 구두와 양복을 즐겨 입으셨고, 한국식 에스프레소를 음미하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까지, 모든 말과 행동이 사목적이셨고 힘이 있으셨다. 이렇게 좋은 분을 왜 하느님께서는 그리도 빨리 하늘나라에 데려가셨을까?

일련의 사건은 마치 무심코 해왔던 인간의 모든 일에 대해 ‘STOP’ 하라는 경고 메시지처럼 들린다. 우리가 무심코 버렸던 쓰레기, 자연스럽게 쓰던 생활용품과 플라스틱이 지구와 자연을 아프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주교님께서 돌아가신 남미 볼리비아는 열악한 환경과 의료시설 때문에 이렇다 할 치료도 받을 수 없는 나라다. 이는 지구상에 있는 불공정과 무관심에 대한 경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주교님의 죽음은 더욱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외침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에우제니오 주교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