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아픈 손가락 / 한성숙

한성숙(레지나),(제1대리구 율전동본당)
입력일 2020-09-08 수정일 2020-09-08 발행일 2020-09-13 제 3211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이비 종교로 혼란스러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일상의 생활로 안정을 찾게 되자 하느님을 향했던 마음은 다시 내가 중심인 생활로 점차 바뀌었다.

나와 달리 큰아이는 첫영성체 이후 성가대 봉사를 하며, 주일학교를 즐겁게 다녔다. 주중에는 회사업무로, 주말이면 자모회 봉사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던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이 찾아왔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큰아이가 어느 날부터 안색이 좋지 않고,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2주간 미열을 동반한 감기는 좀처럼 낫지 않았고, 밤마다 다리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성장통이려니 생각하고 동네병원에 다니다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당일 오후쯤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잠시 밖으로 내보내시고, 나에게 아이 증상이 ‘백혈병’인거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잠깐 머릿속이 멍해지고, 뭔가 얻어맞는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밀려오는 두려움에 그냥 눈물만 쏟아져 나왔다. 진료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울었다. 어제까지의 평범했던 일상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진단을 받은 뒤, 서울에 있는 성모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재검사후 내려진 최종진단은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이었다. 소아암 중에 치료성적이 좋은 편이라 치료만 잘 받는다면 나을 수 있지만, 항암치료기간이 3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아이가 3년 동안 받아야 할 힘든 치료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왔을까? 내 잘못으로 인해 아이가 고통을 받는 건가? 세상의 모든 불행은 우리 가정에만 찾아온 것 같았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이 모든 일들이 그저 꿈이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과 바람은 달랐고, 우리 가정의 상황은 주변 지인들과 성당에 전해졌다. 아이를 아는 모든 분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마음을 제대로 보듬어 주지 못하고, 기대와 욕심으로 칭찬에 인색한 부족한 엄마에게 묵묵히 사랑을 전했던 큰아이는 나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동안 삶에서 우선순위로 두었던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아이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나를 바라보시는 하느님도 안타까운 마음이셨고, 나 역시 그분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걸 시련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한성숙(레지나),(제1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