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젠더’ 제대로 알고 있나요?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09-01 수정일 2020-09-02 발행일 2020-09-06 제 321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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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 각자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느님 ‘창조질서’ 무시해선 안 돼
사회 영역에서 보는 ‘성’ 관점
남녀 역할 차별 부당하다는 젠더 이론에 사용되는 개념 
생물학적 성 차이 배제하고 성전환·동성애 등 정당화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이용 ‘우려’
육체를 도구로 보는 점에서 낙태 등 윤리 문제도 불러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역할 차별 없이 인정받을 수 있게 전인적 인성교육 이뤄져야

남자와 여자가 하트모양(사랑)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남자 됨 또는 여자 됨은 하나의 선(善)이며, 남자와 여자를 함께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둘이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생물학적 성 차이를 무시한다면, 육체를 단지 도구로 보면서 낙태나 인공수정 등 윤리적 문제들을 낳을 수 있어 우려된다.

최근 대두되는 여러 성범죄에 단골처럼 따라다니는 대안이 ‘성인지 감수성’, ‘성인지 교육’ 등이다. 오늘날 ‘성인지’가 일컫는 ‘젠더’는 도대체 무엇인지, 교회는 ‘젠더’에 담긴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 젠더로서의 성인지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인지’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성을 인지하다’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실 ‘성인지’는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이 말은 ‘젠더 센시티비티’(gender sensitivity)를 ‘성인지 감수성’으로 번역하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성인지 감수성, 혹은 젠더 감수성으로 불리는 이 말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여성대회에서 사용된 후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차별, 불균형 등을 대하는 민감함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학자나 학계에 따라 정의가 달라 공통적으로 합의된 개념은 없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부터 정책, 공공예산 편성 등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법조계에서는 주로 성범죄 사건 중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평등을 이루려는 취지로 사용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용어 자체의 정의가 모호한 만큼 성인지 감수성의 영문표기에 사용된 젠더 개념으로 사용되는 일이 잦다. 이를테면 성인지 교육은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교육(gender sensitivity education)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젠더 교육(gender education)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성인지적 관점은 젠더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뜻한다.

젠더란 생물학적인 성(sex) 이외의 성 중에서도 주로 사회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성에 대한 개념이다. 젠더 이론은 여성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성역할에 따른 남녀의 차별이 부당함을 밝히는 데 사용됐다.

오늘날 젠더 개념은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양성평등(gender equality)기본법이나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 등 국가정책이나 공공기관의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말 표현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젠더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또 양성평등기본법은 모든 공무원이 성인지 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양성평등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젠더는 인문학 등의 영역에서 남녀의 성별 차이가 삶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젠더 이론은 남녀 차별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생물학적 성의 차이조차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이용됐다.

■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

교회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관해 꾸준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가정의 기초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젠더는 더 이상 성의 한 측면을 말하지 않는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젠더만이 성이며,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젠더라는 성(性)은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음을 내세운다. 여기서 육체적인 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육체는 개인이 선택한 성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런 생각은 성전환이나 동성애, 동성 간의 결혼 등도 정당화시킨다. 나아가 성을 해방한다는 명목이 육체를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과 연결되면서 혼전 성관계나 낙태, 인공수정 등의 윤리적 문제들도 불러온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지난해 발표한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에 관해 “성별 차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타파하기는커녕, 성별 차이를 개인의 발전과 인간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만드는 절차와 관행을 제안함으로써, 단순히 성별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젠더 이데올로기가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와 상호성을 부정하고 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가정의 인간학적 기초를 없앤다”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한 “일부 젠더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절대적 이념으로 내세우며 심지어 자녀 교육까지도 좌우하려는 것이기에 염려된다”고 말했다.(56항)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생물학적인 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성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남녀의 고유한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라면서 “차별은 반대해야 하지만 차이는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8년 7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열린 제152차 한국틴스타 교사양성 워크숍 중 참가자들이 ‘호르몬 연극’을 하고 있다. 틴스타는 총체적으로 성을 이해하고 성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교회는 전인적 인격교육으로 이뤄지는 성교육을 강조한다.

■ 성(性)교육에서 인성(人性)교육으로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성경은 인간의 창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라는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됐지만, 남자인 사람과 여자인 사람으로 창조됐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남자 됨’ 또는 ‘여자 됨’은 하나의 선(善)”이라며 “남자와 여자를 함께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둘이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다”고 설명한다.(369~372항) 인간은 그 존재에서 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 문화적 성 역할(gender)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사랑의 기쁨」 56항) 이것은 육체적 성만을 다룬 성교육도, 젠더만을 다룬 성교육도 온전한 성교육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이고 신중한 성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참 교육은 인간의 궁극 목적과 더불어 사회의 선익을 지향하는 인격 형성을 추구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1항) 성교육은 전인적인 교육, 즉 인격교육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유성현 신부는 “성은 인간의 성(人性)”이라며 “성교육은 성에 대한 외부적이고 피상적인 교육이 아니라 인간학·철학적으로 인간을 보고 전인적인 인성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