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인사고과 40%는 ‘사랑’ 대전 ‘성심당’ 경영 이념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09-01 수정일 2020-09-07 발행일 2020-09-06 제 321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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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실천하면 승진… ‘사랑 챔피언’ 우대합니다
한국전쟁 때부터 나눔 실천한 창업주
선대 정신 본받아 이타적 경영 구체화
복음적 확신 갖고 ‘사랑 경영’ 시작
‘이윤보다 사람’… 새 기업문화로 정착

성심당의 임직원들은 ‘한가족’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관심으로 일터에는 웃음이 넘치고, 동료를 향한 미소는 고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성심당 제공

“요즘 몸이 좋지 않았는데, 생산팀 서희 셰프님께서 약을 사다 주셨습니다. 혼자 나와 살면서 아플 때 서럽고 힘들었는데….”

“제 파트너 승은 서무가 어느 날 아침 도시락을 건네줬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퇴근길에 서무님을 뵙고 가라고 해서 들렀더니 이쁘게 포장된 향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올해 성년이 된 제게 선물을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누군가 직원들 위생화를 닦아 주고 있었습니다. 버리는 행주를 깨끗이 빨아 동료들의 더러워진 위생화를 닦아 주는 모습에 작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 일상적인 사랑 실천

대전 빵집 성심당(대표 임영진) 직원들 일상이다. 동료들에 대한 작은 사랑 실천, 이제는 그다지 색다른 모습도 아니다. 성심당 직원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들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본받는 사랑이 모든 이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이처럼 동료들을 사랑하고 고객들을 사랑하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른다. 직원들에게 일상의 작은 사랑 실천들이 익숙하게 된 것은 ‘애정 표현’이 인사 평가의 40%를 차지하는 제도 덕분이다. 성심당은 모든 직원들이 ‘사랑의 챔피언’이 되기를 권한다.

■ 사랑 실천으로 인사평가

인사 평가는 매년 11월에 시작돼 1월까지 승진자 및 연봉이 결정된다. 초록실천(환경보호) 관련 점수와 교육 점수, 그리고 업무 평가가 이뤄지고, 전체 평가의 40%에 해당하는 사랑 실천 점수가 매겨진다.

고과 점수를 부여하는 사랑 실천 유형은 6가지. 성심당에서 매주 발행되는 ‘한가족 신문’에 기사를 실으면 0.5점, 동료에게 먹거리를 선물하면 1점, 동료에게 선물이나 약을 사다 주거나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다 주면 2점, 동료의 업무를 도와 줘도 같은 점수를 준다. 휴무일에 동료를 돕거나 외부 봉사활동을 하면 3점, 감동적인 사랑 실천, 진실한 마음으로 동료를 배려한 경우에는 4점이다. 동료와의 갈등에서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거나 한 달 이상 업무 이외에 사랑 문화를 전파하면 무려 5점이다.

사랑 실천 사례들은 사랑 실천 수혜자들이 감사의 뜻을 담아 작성한 글로서 ‘한가족 신문’에 게재된다. 인사팀과 CS팀(고객만족팀), 그리고 각 부서 노사협의회 대표들이 인사 평가 때 이 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고 점수를 책정한다.

사랑 실천 인사 고과 제도를 처음 실시한 것이 2013년. 이듬해 사랑 실천 사례는 56건에 불과했다. 2018년에는 무려 2726건, 2019년에는 약 1700여 건에 달하는 사례가 보고됐다. 2015년부터는 ‘사랑의 챔피언’이라는 제도를 만들었고 매년 사랑 실천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으며, 모범적으로 사랑을 실천한 직원에게는 특진의 혜택도 선사했다.

■ 사랑 경영, 그 뿌리는

성심당의 사랑 경영은 이미 선대 창업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 고(故) 임길순(암브로시오) 성심당 창업주는 한국전쟁 와중에 흥남부두를 탈출해 거제와 진해를 거쳐 대전역에 도착해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찐빵 300개 팔면 100개를 이웃과 나누는 남편에게 부인 한순덕(마르가리타)씨가 “혼자만 천당 갈꺼냐”며 역정을 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심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존폐 기로에 서서 큰 위기들을 넘겨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전 원도심이 쇠락했고, 변화하는 제과 트렌드가 경영을 위협했다. 임영진 대표의 동생이 프랜차이즈 성심당을 따로 세웠다가 실패를 하는 와중에 회사는 빚더미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 1월 22일 토요일 저녁, 큰 화재가 났다. 성심당은 잿더미가 됐고 재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화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화재 현장에 모인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즉각 복구에 나섰고, 불과 6일 만에 어렵게 구한 중고 기계를 들여 다시 빵을 구워 냈다. 그렇게 그들은 ‘한가족’이 됐다.

임영진 대표(왼쪽)와 김미진 이사 부부가 성심당 본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심당 제공

■ 성심당의 정체성

2000년대 초 성심당이 채택한 경영 이념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였다. 화재 후 성심당은 ‘모든 이’가 누구일지 고민했다. 그들은 손님이었고, 직원이었고,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 모두였다. 가난한 이들도 주눅들지 않고 부유한 이들도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 그런 성심당을 지향했다.

선대의 정신은 포콜라레 정신으로 확장됐다. 포콜라레를 통해 부부는 적당히 착하게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빵집을 통해 이타적 경영과 보편적 형제애를 실천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필리핀의 포콜라레 새인류학교에서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경제)를 만났다. 밭에서 발견한 이 보물은 이후, 특히 화재 이후 성심당 경영에 전사적으로 도입됐다.

2007년 새해를 여는 미사 후에 부부는 성심당의 새 비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불과 30분 만에 ‘무지개 프로젝트’를 입안했다. 창업주 경영 이념과 포콜라레 정신을 조화시켜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성심당 경영 이념을 구체화한 것이다.

또한 화재로 절절하게 체득한 ‘한가족’의 일체감을 구현하기 위한 ‘한가족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매주 50쪽 분량으로 발간하는 ‘한가족 신문’에는 한 주간 성심당 대소사가 빠짐없이 실린다. 직원들 가정이나 숙소를 방문하는 ‘한가족 프로젝트’와 연 1회 열리는 ‘한가족 캠프’도 실시됐다.

이처럼, 창업주의 사랑과 나눔 정신, 포콜라레 운동에서 기인하는 EoC 이념, 화재 이후 확고해진 ‘한 가족’ 의식, ‘모든 이’를 향한 따뜻한 애정의 눈길 등이 성심당 사랑 실천 경영의 토대를 이뤘다.

■ 서로 사랑하라

2013년 시무식, 임영진 대표는 ‘사랑의 경영’을 설파하면서 ‘사랑의 성심인 사랑의 챔피언’ 프로젝트 실시를 선언했다. 그는 모든 임직원들에게 단 한 가지만을 요청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거대 기업 성심당의 비전과 야심을 제시하고 동참을 촉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 사랑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랑 경영 7년 실적은 서로 사랑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사 고과에 사랑 실천이 40%를 차지한다는 것은 낯설었다. 처음에는 “대체 사랑 실천을 어떻게 점수로 매긴다는 것이냐”며 반발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가식적인 행동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사랑이 쌓여 가면서 성심당 식구들은 사랑 실천이 지닌 기적 같은 힘을 몸으로 체험했다. 처음에는 고과 점수를 잘 받으려고, 회사 방침이니까 억지로, 규정이니까 따라야 했지만, 동료의 자잘한 배려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보여 준 작은 관심으로 동료 얼굴에 피어난 웃음꽃은 더 이상 고과 점수가 아니었다.

성심당의 사랑 경영은 창업주와 경영진의 복음적 확신과 이를 한치 흔들림 없이 실천하는 의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심당이니까 가능하다”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성심당의 사랑에 바탕을 둔 기업 문화가 회사 경영, 직원과 고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여 왔고 실제로 기업 경영에 그 정신과 제도를 도입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성심당 사랑 경영은 보편성을 갖는다. 물론 사랑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제도만을 답습하거나,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결여되거나, 기업 이윤만을 우선시한다면 사랑 경영은 함부로 도입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 실천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확신하고 체험할 수 있다면, 사랑 경영은 꼭 성심당이 아니어도 하나의 기업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을 성심당은 지난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