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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살예방의 날 특집] 자살에 대한 교회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이 할 일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9-01 수정일 2020-09-02 발행일 2020-09-06 제 321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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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에 보내는 도움 요청… 알아채는 것이 중요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함부로 할 권리 인간에게 없어
교회, 자살을 죄로 판단하지만 단죄는 인간이 할 몫 아냐
충동자 80% 도움 신호 보내
절망감 표현하면 잘 도와줘야
책임감·연대감으로 위로 필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보내는 정서적 폭발이나 무력감, 절망감 등 경고신호들을 잘 알아채고 돕는 것이 자살예방의 필수다.

하루 평균 37.5명, 오늘도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숨졌다. 분 단위로 환산하면 약 38분에 1명꼴, 잠시 식사를 하고 TV를 보는 동안 누군가는 어디선가 또 숨졌다.

심각한 자살 문제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 10일)을 제정한 지 17년,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 40대와 50대 사망 원인 2위를 자살이 차지하고 있다.(통계청 ‘2018년 사망원인통계’)

근래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운동선수의 자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의 장기화로 ‘모방 자살’과 ‘코로나 우울 자살’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자살과 자살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살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그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조명해 본다.

■ 자살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자살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거부로, 가톨릭교회는 이를 명백히 단죄한다는 의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80항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인간은 생명의 관리자일 뿐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고”, “저마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생명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다섯째 계명은 타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에도 유효하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자’는 성품성사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교회법전」 제1041조 5항)

■ 자살, 자신과 가정·사회에도 악영향

특히 교회는 자살이 자신과 가정·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한다.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는 것”이므로 올바른 ‘자기 사랑’에 어긋나고, 가정과 국가·인류 사회와 맺는 연대 관계도 부당하게 파괴하기 때문에 ‘이웃 사랑’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81항)

실제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살예방 문헌집」에 따르면 한 명의 자살은 최소 여섯 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들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 등 심리·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자살이 가족과 지인,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자살자에 대해 인간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

교회는 자살을 명백한 죄로 보지만, 자살자에 대해선 인간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히브 4,13)라는 말씀처럼 오직 하느님만이 죽은 사람을 심판할 수 있고, 그분만이 한 인간을 그 절망적인 행위로 몰아넣은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느님과 트윗을」, 미헬 레메리 신부)

네덜란드 주교회의 역시 문헌 「안락사와 인간 존엄」에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마태 7,1),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1코린 4,5) 등의 말씀을 인용하며 “자살한 사람들에 대해 최대한 주의와 신중을 다해 말하는 것이 중요한 사목적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83항에 명시된 것처럼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 모두가 ‘자살예방 활동가’ 돼야

무엇보다 교회는 모두가 ‘자살예방 활동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 문제는 정부 노력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고,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돼야 그 효과가 증대될 수 있는 만큼 자살을 막기 위한 활동이 특히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한국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자살예방 지침서-천주교」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 열 명 중 여덟 명은 주변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때문에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경고 신호 확인’이 중요하다. 정서적인 폭발이나 무력감, 마지막을 정리하거나 자신의 상황과 미래에 대해 공개적으로 절망감을 표현하는 등 자살 위기에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경고 신호들을 잘 알아채고 도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별히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이나 자살자 유가족은 그 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자살 위기에 놓이기 쉬운 만큼 이들을 위한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센터장 차바우나 신부는 급격한 말·행동·태도의 변화, 실직과 같은 상황 등으로도 자살 위기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며 “‘알아채 준다는 것’,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혹시 위험은 없는지 등을 알아채 주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차 신부는 “교회 내에서도 가족이나 친구가 자살하면 ‘장례미사 돼요?’, ‘천국 갔어요?’ 이 질문밖에 하지 않는다”며 “자살이 죄라는 것은 변할 수 없고 당연하지만, 그가 천국·지옥에 가는지는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하실 일이라 우리가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가 죄인이 될 때까지 우리는 뭘 했을까, 앞으로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책임감과 연대감을 갖고 그를 돌볼 수 있을까, 남겨진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가 우리의 몫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과 방향성”이라고 조언했다.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우울감 등으로 힘든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전화와 SNS 등으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천주교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02-318-307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센터 ‘다 들어줄 개’ 앱과 카카오톡채널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