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몬세라트의 추억 / 이애정

이애정(율리아) 시인
입력일 2020-09-01 수정일 2020-09-01 발행일 2020-09-06 제 32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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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넘게 살아온 낡은 단독 주택을 팔아버린 여자는 서운함 대신 후련함으로 들떠 있었다.

워낙 오래된 집이었으므로 매매 값으로는 원하던 집을 살 수 없었고 전세 정도는 대충 편하고 예쁜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지만 당시 우리 부부는 ‘집을 팔고 남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그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만 했다. 나름 행복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두 번의 해외여행이었다. 서유럽과 스페인 여행을 확정짓고 몇 날 며칠 설렘으로 통장의 잔액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유럽 여행은 말 그대로 성당투어라 할 만큼 관광지마다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황님이 계신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은 말할 것도 없고 피렌체와 밀라노에 있던 두오모성당이며 독일 퀼른대성당 등은 어떤 관광 명소들보다 규모로나 건축학적 디자인적으로나 최고의 건축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름다웠던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는 천국의 빛이 지상을 비춰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서유럽 여행을 마치고 1년 후 우리 부부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스페인으로 떠났다.

스페인은 가톨릭과 이슬람문화가 공존하는 곳인데 여행 중 만난 1882년에 착공해서 130년이 넘도록 아직도 건축 중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파밀리아성당(성가정성당)과 세비아성당, 몬세라트 수도원 등이 여행을 다녀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움으로 남게 해 준 곳이다.

우리가 몬세라트에 갔을 때는 비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버스는 심하게 흔들거렸고 들쭉날쭉한 몬세라트산에 자리했던 수도원 앞에 마침내 다다랐을 때 우리 일행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개비에 에워싸인 수도원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카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성모님 상(像)이 모셔져 있다 해서 궁금증은 배가 되었고….

수도원 내부는 촛불 하나 정도의 밝기로 어둡고 좁았다. 그런데다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을 것만 같은 미로의 분위기였다. 때문인지 관광객의 대부분은 입구에 있던 기념품점과 카페 같은 곳에서 수도원의 외관만 감상하고 모처럼 얻은 자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성당 안을 꽤나 돌았던 것 같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좁은 길목에 줄을 잇고 있었는데 그곳에 구슬을 한 손에 들고 왕관을 쓴 검은 성모님이 계셨다. 구슬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성모님 상 앞에서 각자의 대화를 성모님과 나누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지금보다 젊었던 내 인생의 몬세라트를 생각한다. 마주 보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쌀쌀했던 성지.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이 불러 주실 때에는 도망을 쳤던 것이 아니었는지. 그러다 보니 수시로 넘어져서 다치고 허둥대다 찾아낸 문 앞에서 밀어야 열리는 문인지 당겨야만 되는 지 헷갈리기도 여러 번이었던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하느님이 정해놓으신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 몬세라트. 나는 그날로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생각한다.

‘주여 정녕 이 잔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뒤뚱뒤뚱 찾아 들어간 입구에서부터 좀체 보이지 않았던 출구를 보여 주시고 또한 암흑에 가까운 성당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성모님은 앞으로의 인생이 이제껏 살아온 날보다도 어렵고 힘들지라도 반드시 출구는 있기 마련이라는 걸 보여 주신 것은 아닐까….

몬세라트의 추억은 내게는 그래서 하느님의 음성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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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정(율리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