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십자가의 길이 참된 명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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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제1독서 (예레 20,7-9) 제2독서 (로마 12,1-2) 복음 (마태 16,21-27)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소명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일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십자가의 길
자기를 비우고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 따를 때 참 제자 될 수 있어

연중 제22주일의 말씀은 삶의 고통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참된 명예를 누리는 길을 밝힙니다. 내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들에게 새 희망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기로 결심만 하면 됩니다.

‘인생은 고해(苦海)다’라는 말이 있듯이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재난과 경기침체 하에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발자취를 따라 고통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인내와 용기가 지혜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 예레미아(기원전 7세기)가 내면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는 첫 고백에서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예레 11,19)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꾐에 넘어가 놀림감이 되고 조롱을 받으며, 주님 말씀이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토로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으면 큰 부담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립니다. 때론 고통과 시련을 겪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예언자는 인간적 고뇌에도 주님의 현존과 뼛속에 간직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결코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양과 염소와 같은 동물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일까요?

그리스도인의 품격은 현세의 위선과 탐욕에 동화되지 않고, 새 정신으로 ‘의로움의 도구’나 ‘의로움의 종’(로마 6,13.16)이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기도 속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지 분별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 봉헌의 삶입니다.

에기노 바이너트의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십자가 수난과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일을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교회의 반석 ‘베드로’라는 이름과 함께 무엇이나 맺고 푸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수제자 베드로(마태 16,16 이하)가 “맙소사, 주님!” 하면서 주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예수님은 즉시 돌아서서 단호한 어조로 반격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하느님의 일은 외면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마태 16,23)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변화시키려고 도전한 베드로는 ‘사탄’이고, ‘걸림돌’이란 모진 질책을 당합니다.

사탄(satan)은 ‘적대자’, ‘반대자’라는 의미의 히브리말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과 대립하는 존재로 마귀, 악마, 더러운 영, 귀신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시대인 오늘날에도 악마는 존재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악마는 존재하고 우리는 악마와 싸워야 한다.” 하십니다. ‘거짓 예언자’나 ‘세상의 우두머리’처럼 교만과 유혹으로 사람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마를 막는 무기는 말씀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호기심이나 재미로라도 악마에게 기회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성자께서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40일간 단식하신 후 성부에 대한 충성심을 악마에게 시험당하셨을 때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마르 8,34; 루카 9,23) 예수님의 생애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 계획을 충실히 받아들여 자신을 버린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죽어야 산다’ 하는 역설이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면 잃고,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는다.”(마태 16,25; 마르 8,35; 루카 9,24) 자기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다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9)하신 겸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소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비움’과 ‘십자가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겸손의 길은 약점과 모욕, 박해와 역경도 달갑게 여기기에, 악마도 두려워하는 은총의 길입니다(2코린 12,9-10).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면 어두운 세상에 별처럼 빛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의 선물을 간직한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성령의 인도대로 살아갑니다. 참된 명예는 고통을 피하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세상의 방식은 거부하고, 자기를 비우고 사회가 부끄럽게 여기는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충실히 따르는 참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소서. 성사의 힘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람을 돕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