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청년들 위해 신부님이 차린 든든한 밥상, ‘청년밥상 문간’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10-12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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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에 담은 사랑, 시대의 청춘을 위로하다
굶주린 청년들을 위한 식당으로 2017년 12월 이문수 신부가 문 열어
밥값 3000원으로 늘 적자이지만 알음알음 보내 오는 후원이 큰 힘
개신교에서 2호점 열어 동참하기도

‘가성비 맛집’, ‘3000원의 행복’

서울 정릉시장과 정릉천이 맞닿은 자리. 동네에서도 온라인상에서도 입소문이 난 맛집이 있다. 메뉴는 김치찌개 달랑 하나지만, 밥과 반찬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 단돈 3000원으로 청년들이 따듯한 한 끼를 든든하게 먹게 해 주는 식당. ‘청년밥상 문간’(서울시 성북구 보국문로11길 18-2, 이하 ‘문간’)을 찾았다.

‘문간’의 대표 메뉴, 김치찌개를 내고 있는 이문수 신부. 이 신부는 “청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오늘도 ‘문간’을 연다.

■ 신부님이 차린 밥집

“김치찌개 나왔습니다.”

진한 육수에 잘 익은 김치, 두부, 돼지고기가 듬뿍 담긴 김치찌개가 가스렌지 위에 올라온다. 이내 퍼지는 찌개 냄새와 보글보글 소리에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고 만다. 언뜻 보기에도 양이 제법 많아 보인다. 식사를 마친 한 손님은 “가격도 싸고 맛있는데 양까지 많다”며 “양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해 미안할 정도”라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열심히 김치찌개를 나르는 점원에게 손님이 인사를 건넨다. ‘문간’은 다른 식당에 비해 유난히 먼저 인사를 건네는 손님이 많다. 손님과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이 점원은 사실 ‘문간’의 사장님이다. 그리고 이 사장님의 본업은 ‘신부님’이다.

‘문간’ 사장 이문수 신부(글라렛선교수도회)를 보고 “어떻게 신부님이 이런 일을 하냐”라며 신기해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이 신부에게 ‘문간’은 그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한 일이다. 이 신부는 “‘문간’의 목적은 대한민국 청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교회가 청년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표현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신부가 밥집을 차리기로 결심한 건 2015년의 일이다. 인천의 전교가르멜수녀원을 방문한 이 신부는 한 수녀와 고시원에서 굶어 죽은 청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청년을 위한 식당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신부는 어르신이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도 많았고 결식아동을 위한 시스템도 있었지만, 굶주린 청년을 위한 식당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 2017년 12월 ‘문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신부는 “청년의 죽음에 가슴만 아파했지 구체적인 행동은 생각지 못했는데 수녀님께 식당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청년을 위한 새로운 사도직을 고민하던 수도회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 청년을 위한 공간

이 신부가 밥집을 차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청’이었다. 청년들을 상담하는 상담사, 청소년·청년과 함께 생활하는 활동가, 청년 요리사, 고시원 거주 경험이 있는 청년 등을 수소문해 만나며 ‘청년에게 필요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청년에게 그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며 쉬어갈 수 있는 편한 공간. ‘문간’에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드나드는 문턱 없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래서 ‘문간’은 청년을 위한 식당이지만, 청년이 아니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똑같은 3000원에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어려운 청년에게 3000원보다도 그 어려운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찌개 양이 많다 보니 여성들은 인원수보다 적게 시켜 나눠먹기도 하고, 청소년들도 여러 명이 찌개 하나를 시켜 밥과 반찬의 무한리필을 이용하기도 한다. 정릉시장의 방문객이나 인근의 어르신도 온다. “청년이 아닌 손님이 많을수록 청년도 찾아오기도 편하다”는 것이 이 신부의 설명이다. 이렇게 누구나 똑같이 이용하는 ‘문간’에서는 손님 중 누가 어려운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문간’은 식당 외에도 북카페와 옥상을 개방하고 있어, 식사 목적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1년째 ‘문간’의 단골이라는 김원종(24)씨는 “타지에서 왔는데 ‘문간’에 올 때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매번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서 “종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천주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간’에는 십자고상도, 성모상도 없다. 이 신부도 ‘문간’에 출근할 때는 로만칼라를 착용하지 않는다. 종교관이 다른 청년들도 방문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이 곳에서 편하게 ‘신부님’을 찾고 있다.

어떤 신자들은 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기도 하고, 신자가 아닌 청년들도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곤 했다. 심지어 불교나 개신교, 정교회 신자 청년이 ‘문간’을 찾아와 이 신부에게 성소상담을 청하기도 했다.

이 신부는 “손님으로 오는 청년들의 사정을 묻는 일은 없지만, 청년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오곤 한다”며 “청년들에겐 성당이나 수도원에 있는 신부보다 밥 주는 신부가 더 편한가 보다”며 웃었다.

이문수 신부가 ‘문간’을 찾은 청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간’ 옆에 위치한 북카페. 청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간’ 복도에 붙어 있는 방문객들의 메모들.

■ 나눔에서 나눔으로

한 그릇 3000원이다 보니 밥값만으론 늘 적자다. 손님이 일평균 130명은 돼야 적자를 면할 수 있지만, 지난해 ‘문간’의 손님은 일평균 90여 명.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더 적은 형편이다. 그래서 ‘문간’의 운영은 알음알음 보내 오는 나눔의 손길로 이뤄진다. 후원 방식은 다양하다. 후원금을 보내는 이도 있고, 결혼식에서 받은 ‘쌀화환’이나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내는 이도 있다. ‘문간’에서 직접 봉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또 ‘문간’의 나눔은 또 다른 ‘문간’으로 이어졌다. ‘문간’의 취지에 공감한 최운형 목사가 이 신부를 찾아와 ‘문간’을 직접 체험하고 2018년 10월 은평구에 ‘문간’ 2호점을 연 것이다. 최근에는 ‘문간’ 2호점이 개신교계에서도 이슈가 되면서, 동참하고자 하는 목사들의 문의가 늘었다.

이 신부의 ‘문간’ 역시 재단법인으로 운영하던 방식을 사회적 협동조합을 발족해 더 많은 이들이 ‘문간’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이 신부는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문간’을 운영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며 “가능하다면 앞으로 적자를 줄여 또 다른 곳에 ‘문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19로 더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려움이 계속되면 도움 청하기도 미안해지고 사람들과 만남도 피하고 싶을 수 있지만, 손을 내민다면 잡아 줄 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요즘 너무도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포기하지는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2-741-6031 청년밥상 문간

후원계좌 301-0272-7703-61 농협(예금주: 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