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내 작은 소망, 주님이 아셨으니

박신희(베아트리체) 명예기자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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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이제껏 아이가 제 때보다 서둘러 한 것이라고는 뱃속에서 예정일보다 일찍 나온 것 뿐 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코로나19 이후 1/3로 등교인원이 조정돼 오랜만에 등교하는 아침, 아이보다는 내 마음이 바쁘다.

“마스크는? 여분 챙겼지? 시간표 확인 다 했구?”

“우산은? 비올 거 같잖아. 우산 챙겨야지. 좀, 이제 알아서 챙겨.”

아이가 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나의 걱정들은 잔소리가 되어 아이에게 쏟아진다. 이렇다 할 답도 없이 아이는 등을 보인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빼꼼히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아이의 이마에 성호를 그어주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으며 다정히 빰에 입을 맞춰주었던 날들을 떠올린다. 그때와 지금의 온도차를 느낀다.

아이를 가졌을 때 나는 입덧이 심했다. 겨우 입에 맞는 것이 복숭아였던 나는 그 해 여름에 복숭아 6박스를 먹었고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두고 ‘아이 피부가 얼마나 뽀얗게 태어날까?’하고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녀석을 나는 검둥개라 부른다. 예정일 보다 앞서 태어난 녀석은 그저 작고 까맸다. 자연분만을 한 나의 퇴원이 결정되고도 아이는 몸무게 미달로 퇴원을 할 수가 없었다. 산모가 그렇게 울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이가 안스러운 마음에 눈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 주세요.’ 아이는 성탄절 아침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고 우리 부부는 그 날의 감사함을 기억하고자 아이의 세례명에 ‘노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노엘은 ‘건강하게만’이라는 기도 그대로 느긋하고 체격 좋은 검둥개로 성장했다.

올해 본당에는 견진성사가 예정되어 있다. 아직 초등학생이던 때에 아이는 견진성사를 받고싶어 했었다. 아는 형이 유아세례 때 대부를 서는 것을 보며 아이는 말했다. “엄마, 누가 세례를 받을 때 대부가 되어 준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 나도 빨리 견진을 받고 대부를 설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견진대상이 된 아이를 두고 나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바라는 대로 아이는 교육에 참여하고 견진성사를 받는다고 할까? 아이는 점점 나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함께하던 신앙생활 밖으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수동적이긴 하지만 습관으로라도 참례하던 주일미사였는데 아이는 미사중단 시기를 지나며 습관이란 것마저 약해져버렸다.

“미사에 가도 아무도 없어. 애들이 아무도 안 와.”

“친구 만나러 미사에 가는 건 아니잖아.”

매 주일 아이와 나 사이에 같은 말들이 오고간다. 내가 물려받은 것처럼 아이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요즘 아이의 행동에 닿아 조바심이 된다.

며칠 전 평일 저녁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아이에게 넌지시 동행을 요청했었다. 아이는 입술을 내민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다. “엄마는 너랑 나란히 미사 드리러 가던 때가 좋았었어.” 하릴없는 혼잣말을 남기고 미사를 드리러 가며 아들의 신앙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그치지 않았던 모니카 성녀를 생각한다.

잘못된 길을 가는 아우구스티누스 때문에 마음 아파하던 성녀 모니카에게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는 “용기를 내십시오. 그토록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으니, 그는 절대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아직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미사를 드리고 나오니 비가 내린다. 유난히 긴 장마이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린다.

“비가 오는데 어떡해요? 우산 가져가셨어요?”

“응, 우산은 가져왔는데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써도 다 젖고 있어. 그래도 괜찮아.”

“조심히 오세요, 어머니.”

매일을 함께하는 아이 안에서 무엇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 눈물과 기도에 담긴 작은 소망, 주님께서 아셨으니.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박신희(베아트리체)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