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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하여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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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양을 상대했던 서구 그리스도교의 선교 활동은 분명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선교는 미개한 것에 대한 개화(開化)의 의미를 포함하기 쉬웠는데, 이와 같은 제국주의 문화에서는 ‘중심부’의 사상을 ‘주변부’에 이식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의 일부 선교사들은 실제로 제국주의 세력 확장에 직접 간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첫 선교사들은 제국의 ‘중심’으로 파견된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더 나아가 초기 교회의 가르침은 선교사들에게 ‘방랑자’의 자세를 요구하는데(마르 6,7-9) 성경은 ‘제국의 평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스스로 약자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는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이며, 그렇기에 세상에서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마태 5,13)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상의 순례자이자 이방인이었던 초기 공동체를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선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상대를 타자(他者)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타자가 되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한 것처럼, “타자는 빈자, 이방인, 과부, 고아의 모습을 갖는 동시에 스승의 모습을 가지며 그것이 주체에게 자유를 수여하며 주체의 자유를 기초 지우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질서와 안정을 교란할 수 있는 타자는 주체에게는 낯선 고통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낯선 타자, 그리고 이방인과의 교류는 서로를 오롯이 존재하게 만드는 실존적 기회다.

최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는 미국 출신 노(老) 선교사 함제도 신부의 구술사를 회고록으로 엮었다. 책은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의 한 소년이 신부가 되는 과정으로 시작하는데, 전쟁 직후 가장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로 온 청년 사제의 삶은 그가 평생 그리워했던 북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신부님은 1990년 이후 결핵 환자들을 돕기 위해 60여 차례나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예전의 남한과 많이 닮아 있는 북한, 그 사람들을 연민하는 ‘할아버지 동무 신부님’은 북녘의 아픔에 관심이 별로 없는 지금의 남한이 안타깝고 아쉽다. 남북한 모두를 사랑하는 ‘이방인’ 선교사의 마음, 그리고 한국에 미국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신부님의 말씀은 아직 갈라진 이 땅의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선교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고 있다.

한반도 전체의 복음화라는 사명을 지난 한국천주교회가 이제 그리스도교 선교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상대를 타자화하는 ‘제국주의적 선교’의 방식은 복음이 얘기하는 선교가 될 수 없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하면서, 낯선 것들을 이해하는 선교를 통해 복음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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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