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파업하더라도 생명은 살리면서…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6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파업으로 인한 의료인 부족으로 코로나 검사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지난 8월 21일이었다. 서울 성모병원 선별진료소 앞에 세워져 있다는 안내판을 매체로 읽는 순간,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주위에서는 주로 이런 말들을 했다. “코로나가 재확산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최대 위기라는데, 의사들은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는다니…? 그것도 ‘생명주의’와 ‘사랑’이 브랜드처럼 돼있는 가톨릭병원이 앞장서서…?”

물론 파업은 원래 업종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담보로 잡는다. 업종의 가장 예민한 부분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가정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탱해주는 보루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의사들의 파업은 그 담보가(본의든 아니든) ‘사람의 생명’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파업이 처한 상황이 예전과 전혀 다르다. 코로나 재확산 위기를 맞아 국민들은 공포로 얼어붙고 온 나라가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큰 위기’라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방역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적조치로 엄중하게 법집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공권력이 살아 있다는걸 보여 달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 표현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말의 권위주의적 뉘앙스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입에 담지 않던 표현이다. 대통령이 평소 쓰지 않던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의 팬데믹 상황이 위급한 때이니 사회질서를 잡기위해 강경하게 대처해달라고 행정부에 주문한 것이다.

이제 자칫 잘못 되어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넘어가면 준 전시상황이나 다름없게 된다. 사회적으로 일부 필수시설만 남기고 대부분 시설은 문을 닫아야한다. 기업체는 할 수 있는 한 재택근무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전면 중지될 것이며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가 극도로 위축된다.

만약 사망자가 대폭 늘어나면, 시민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악영향을 받는다. 전체 사회에 우울과 공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것이다. 우리들의 현재 삶은 상당부분이 망가질 것이라고 봐야한다.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목격하는 일이지만 그 와중에서 병자·빈자·노인·장애인 같은 약자들이 우선 희생될 것이다.

지금부터 의사들의 일은 더 많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의사와 더 많은 병상의 확보가 큰 문제로 대두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묻는다. “의사들의 파업시점이 왜 하필 지금인가?” “전시에 부상자를 치료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코로나 대확산 시기와 때를 같이하는 의사파업 - 코로나 검사마저 안 되는 - 에 대해 큰 걱정을 한다. 의사단체가 의도적으로 코로나 재확산 위기 시점에 파업시점을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버렸다. 현실은 의사들이 코로나 대확산의 위기에 때를 맞춰 파업을 단행한 것이 됐다.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거룩한 일은 없으며, 의사의 직업적 소명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상한 갈대도 꺾지 말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1차적인 일은 의사들의 손에 달렸다. 예수님이 유다인의 관습에 맞서면서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도 병자를 낫게 하기 위해서였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한 사회의 성숙도를 말해주는 가치 수준은 위기 때에 드러나며 이 역시 생명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한다. 사람의 생명은 처음부터 그 자체가 고귀한 가치이지 파업 등의 교환가치가 아니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으로 비유하자면, “파업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파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들은 불가피하게 파업을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우선 살리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코로나 업무와 곧 수술을 받아야하는 중환자 등을 우선 돌보면서 파업협상을 할 것으로 믿는다, 아니 기도한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우리 사회를 성숙시킬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