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하느님의 초대 / 한성숙

한성숙(레지나) (제1대리구 율전동본당)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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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맏이로 자란 나의 어린 시절 종교는 불교였다. 조용한 암자의 널찍한 마루와 마당은 뛰어놀기에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고, 떡과 과일, 풍성한 먹거리와 절에서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엄마는 어린 우리를 데리고 자주 절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엄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믿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진학하면서 개신교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적인 불교와 달리 찬양과 율동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예배 시간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종교는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하느님의 초대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찾아왔다.

성당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친구소개로 만난 남자친구 어머니의 권유에서였다. 나의 조건이 아들의 배우자로서 탐탁지 않으셨던 어머님께서 세례를 받을 것을 권유를 하셨고, 난 고민 없이 “네”하고 바로 예비자 교리 수업을 시작했다. 부모님 마음에 들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언젠가 회사 동료의 혼배미사를 보고 가톨릭에 대해 궁금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불교를 절대 신앙으로 믿으시는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교리수업과 미사참례를 하면서 마음에 믿음의 싹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을 무렵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걱정과 달리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주셨다.

찰고 때 주임 신부님께서 불교와 기독교를 거쳐 신앙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게 되어 축하한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세례식 때 흘린 눈물은 회개의 눈물인지 감사의 눈물인지 모르지만,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세례를 받았지만, 남자친구와는 가족이 되지 못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아쉬움과 공허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무렵 세례를 받았던 성당에서 6주간 견진교리가 시작된다는 봉사자의 연락이 왔다. 고민하는 나에게 기왕 세례도 받았으니 견진성사까지 받으면 더 많은 은총을 주실 거라는 말씀에 다시 교리 수업을 시작했다.

세례를 받을 때 청하는 기도는 들어주신다고 했던가? 내가 청한 기도는 같은 신앙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고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기도였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부르실 때부터 이미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알고 계셨고, 기도 또한 듣고 계셨나 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는지 운명처럼 견진성사 하루 전날 남편을 만났다. 견진성사를 받고, 4개월 후 왕림성당에서 혼배미사를 하고 내가 청한 기도대로 성가정을 이뤘다.

하느님 초대에 응했을 뿐인데, 나에게 넘치도록 많은 사랑과 은총을 보내주셨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5,2)

한성숙(레지나) (제1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