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33)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9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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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임마누엘’ 하느님을 발견하는 은총
“하느님께서는 매 순간 함께하시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관심을 계속해서 발견해 가고 감사하는 것이다.”

아침 6시30분, 우리 가족의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아내는 출근 시간이 이르고, 나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출근해야 하므로 아침 시간이 꽤 분주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큰애들 식사와 간식거리를 챙겨놓고, 막둥이를 깨워 밥 먹이고 씻긴다. 그리고서 자고 있는 큰애들에게 들리든 말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다음, 막둥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직장까지 한 시간여를 차를 몰고 간다.

최근 직장을 옮긴 터라 적응할 것도 많고 챙겨볼 자료도 많다. 중간중간 외부 회의와 출장이 있고, 써야 할 원고들과 준비해야 할 강의까지 신경 쓰다 보면 금방 퇴근 시간이다.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집에 오면, 저녁 먹고 치우고, 막둥이 씻기고 놀아주고, 큰애들 숙제를 봐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들면 아내랑 차 한잔을 하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사 문제를 비롯해 큰애 학원 문제, 둘째 핸드폰 문제, 막둥이 어린이집 생활 등등 고민해야 할 것과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잠시 앉아 하루를 성찰한다.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님 품에 안겨 그분의 따스하고 환한 온기를 상상해본다. 하루 종일 분주하고 예민하고 때로 어두웠던 마음이 이내 뽀송뽀송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서 마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하루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듯, 그분의 손을 잡고 나의 하루를 함께 돌아본다.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별로 감사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었던 하루 같았는데, 막상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돌아보면 여기저기서 감사한 것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하루를 별 일없이 잘 보낸 것을 비롯해 아이들의 웃음, 직장 동료의 배려, 퇴근 무렵 라디오에서 들었던 음악의 감동, 저녁 밥상 가족들의 화기애애함, 아내와 대화에서 느꼈던 동지감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감사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감사함이지만, 그래서 잊기 쉬운, 그러나 너무나 소중한 감사함들이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하셨는지에 머물러 본다. 직장에서 바쁘고 분주하게 일하며 지냈던 나를 사랑스럽게, 안쓰럽게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며 챙긴 내 마음속에 하느님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걱정하며 살펴보셨음이 다가왔다. 아이의 행동 하나, 마음 하나까지 살피는 엄마처럼 ‘하느님께서도 하루 종일 나를 살피셨구나’, ‘그분으로부터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사건, 특히 나를 불편하게 했던 때와 그때의 마음에 더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내 맘대로 했던 내 기질, 상처가 보이기도 하고, 혹은 세상 속 어둠, 구조적인 악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받는 죄인으로서 나의 어둠을 아프게 돌아보고, 세상의 어둠에 대해 당신께 치유와 희망의 은총을 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물로 주신 내일을 보다 잘 살기 위한 결심도 한다.

하느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시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관심을 계속해서 발견해 가고 감사하는 것이다. 특히 세상 속에서 세상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상 속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은 매주 중요하다. 우리 일상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때 우리 삶은 더욱 기쁘고, 감사하고, 풍요로운 선물 같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루에 대한 성찰은 훌륭한 도구가 된다.

월터 J. 취제크 신부님은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나를 이끄시는 분」이라는 책에서 23년간 러시아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겪은 체험을 기록하셨다.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신부님이 깊게 체험했던 것은 어떠한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체험을 통해 신부님은 죽을 것 같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고, 하느님께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모든 것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 그것을 발견해 가는 은총을 더 청해야겠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