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83. 교계의 구성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9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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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871~879항

성직자의 성화는 자신의 것을 신자에게 내어줌으로 이뤄진다
예수님 은총의 통로 역할로서 그리스도 대신 파견된 성직자들
말씀과 은총은 그리스도의 것 하느님 선물에 따라 베풀수 있어

알레산드로 알로리의 ‘물 위를 걷는 성 베드로’. 예수님이 하시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따라 한 베드로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다는 용기로 그분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마더 데레사가 미국 어떤 도시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점잖게 차려입은 한 부인이 수녀님을 붙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외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지금 자살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요.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해 주실 수 없나요?”

데레사 수녀는 “자매님, 제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제가 사는 켈커타(현재 ‘콜카타’)에 오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부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인이 켈커타에 도착하니 데레사 수녀님은 기아와 질병으로 까맣게 말라 죽어가는 이들을 붙들고 부지런히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을 보고는 다급하게, “죄송한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수녀님이 “아직도 자살을 생각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에요. 한 달 동안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아요. 수녀님, 감사합니다!”

데레사 수녀는 일만 시켰습니다. 그런데도 감사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이 흐르는 길목에 그 부인을 참여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은총을 받으려면 은총의 통로에 머물러야 합니다. 은총의 통로에 머물면 자신도 은총으로 가득 찹니다.

예수님께서 왜 교회의 성직자들을 세우셨을까요? 당신이 내어주시는 은총의 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이집트로 파견하실 때 모세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뽑아달라고 청했습니다.(탈출 4,10-17 참조)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기는 하였으나 태어날 때부터 왕실에서 자라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형 아론은 모세와도 친밀했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과도 친밀했기에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이 모세 앞에서 뽑힘을 받았다고 뽐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은총의 통로에 결합해 준 모세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덕분으로 말씀과 은총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되셨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본성도 지니셨기에 우리에겐 너무 먼 분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물 위를 걸으시면 우리는 ‘그분은 하느님이시니까 하실 수 있고, 우리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인간인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면 어떻게 될까요?

베드로는 지금의 교황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면서 비틀거리고 물에 빠지기도 한 것처럼, 교황도 인간적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따라 한 베드로가 있었기에, 우리도 감히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다며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면서 자신은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은총의 중개자인 성직자들의 성화는 곧 자신이 받은 거룩한 것을 신자들에게 내어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인 성직자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875) 파견받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베푸는 은총은 “스스로는 행하거나 줄 수 없고 다만 하느님의 선물에 따라 행하고 베푸는 것”(875)입니다. 밀떡이 선별되어 축성되고 성체가 되었다면 자랑이 아니라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일로 뽑힌 성직자들도 그 본질상 “성사적”(876~878)입니다. 성사는 타인을 위해 존재합니다. 성직자들도 “말씀과 은총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므로, 그들은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876) 교황은 자신을 지칭할 때 “종들의 종”(Servus servorum)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거스르려면 노를 힘차게 저어야 합니다. 그 강물이 성직자가 받는 은총이라면 노를 젓는 것은 받은 은총을 내어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추진력으로 그는 은총의 근원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성직자들은 받은 은총을 베풂으로써 성화 되고 하늘 나라에 가까이 나아갑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