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임마누엘 하느님 / 이정남

이정남(노엘라) 시인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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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를 꿈꾸며 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대입학원에 다니던 때였다. 시험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폐결핵으로 대입을 포기하고 여동생이 자취하는 시골에 내려가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하느님의 인도로 오게 되었다는 한 여인으로부터 “하느님이 병을 낫게 해 주신다”는 방언을 들었고, 며칠 후 ‘하느님, 저를 당신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간절한 맘으로 안수 기도를 받고 매일 되풀이되던 기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은총을 받았다. 죽기 전 묵상집 한 권을 내겠다는 서원을 들으신 하느님은 시인과 평론가로 등단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이후 내 삶은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된 삶이었다.

결혼 전 무신론자였던 남편은 나와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에 입교한 후 혼인 성사까지 받았지만, 주일 미사도 참례하지 않으면서 주일날 성당에 가는 나와 두 아들을 못마땅해 하였다.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배우고 온 날이면 두 아들을 불러 ‘인간을 만든 건 하느님이 아니라 에너지’라고 가르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 에너지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아들 베드로가 복사를 하자 아내에 이어 아들까지 하느님께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 주일이면 성당에 못 가게 하려고 없던 스케줄도 만들어 내었다. “하느님과 나, 둘 중 누굴 더 사랑하느냐?”며 말도 안 되는 비교를 강요할 때마다 나는 “내가 하느님보다 세속적인 것을 더 사랑했다면 걸핏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당신과의 결혼생활은 진작에 끝났을 것”이라며 신앙을 버리라고 하는 건 나와 헤어지자는 말인데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며 남편의 질투심을 잠재웠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화가 나면 이성을 잃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고 그럴 때마다 남편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이혼하자는 소리를 꺼내어 남편으로부터 다시는 고함을 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런 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져 나의 결혼 생활은 시나브로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살얼음 같은 결혼 생활 13년 차, 2013년 3월 사순 기간이었다. 나의 진심을 오해한 남편의 도를 넘은 폭력에 만신창이가 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결혼 생활 무의미하니 정말 끝내자”고 하니 남편은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다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용서를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내가 용서해 줄 때까지 나가 있겠다며 집을 나선 남편은 갈 곳이 없자 성당으로 발길을 옮겨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응시하며 오랜 시간 묵상하며 느낀 것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하느님을 부정하니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었고, 하느님이 나와 남편에게 서로의 손을 잡고 당신을 따라오라는 말씀도 들려주었다며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위해 나의 용서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꽃샘추위에 찜질방을 전전하며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일단 집으로 들어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 나간 지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그야말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다. 모든 사람을 하느님 대하듯 대하면 모두가 선한 하느님이 될 수 있다며 악을 몰아내고 선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님 닮은 사랑뿐이라며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 그 무렵 큰아들이 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남편은 그 친구에게 사랑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며 그 아이를 만나자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그렇게 늘 한없는 사랑으로 나와 함께 계셨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정남(노엘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