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 선교 수도회(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8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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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양성 위한 신학교에서 시작

창립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

1837년 독일 라인 강변에 위치한 고흐(Goch)에서 태어난 성 아놀드 얀센 신부(1837~1909)는 수학과 과학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사제직에 대한 열망으로 신학을 공부한 뒤 24세 때인 1861년 8월 15일 당시 뮌스터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그 후에는 독일 북서부 보홀트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의 영성적인 발전과 특히 해외 선교에 투신하고픈 열망을 키워가던 성인은 ‘기도의 사도회’ 회장을 맡아 방학만 되면 선교용 소책자를 들고 본당을 찾아다니며 기도 모임을 열었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는 독일 전역에서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문화 투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그에게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성인은 그 이듬해 해외 선교에 대한 영감을 담은 선교 잡지 「예수 성심의 작은 사자」(Little Messenger of the Sacred Heart)를 발간했다.

그는 잡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던 복음 전파에 투신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또한 대중들의 선교 의식을 고취해 선교 신학교 건립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잡지가 짧은 시일 내에 많은 독자를 늘리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 설립을 결심했다.

그러나 문화 투쟁 영향으로 독일 내 선교 신학교 설립이 금지된 상황에서 성인은 네덜란드로 시선을 돌렸다. ‘신학교 건립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지는 시간이 바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며 해외 선교를 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라 답했다.

마침내 많은 이들의 지지와 협찬을 얻어 1875년 9월 8일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 선교 신학교,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이 설립됐다. 이는 곧 말씀의 선교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SVD, 이하 수도회)의 시작이었다.

SVD 명칭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 소명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고, 특별히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성인은 세상 모든 나라에 주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 했고, 중국을 가장 마음에 두었다.

수도회 창립 4년 만인 1879년 그는 최초의 선교사를 중국에 파견했다. 이어서 일본,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홍콩, 대만, 한국으로도 선교사들을 보냈고 최근에는 미얀마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선교사 수는 수도회의 53%에 해당한다.

계속해서 남미, 아프리카에 진출한 수도회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오늘날 65개국에서 모인 약 6000명 선교 사제와 수사들이 전 세계 72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