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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심는 사람들] 88. 중환자의 위로자 최영식씨

최용호 기자
입력일 2020-08-14 수정일 2020-08-14 발행일 1989-07-09 제 166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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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에도 불구 중환자신자 돌봐
치열했던 금성전투서 파편에 부상당해
대학생의 6.25 북침설 주장 가슴아파
『저보다 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전신마비로 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온지 6년째.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전문의료기관이 보훈병원에서 최영식(요한클소스토모ㆍ64)씨가 가꾸어 온 신앙의 터전은 이제 그 뿌리를 깊이 내렸다.

6.25 당시 목뒤에 박힌 파편제거수술 후 전신마비 증세가 나타나 10년 전부터 휠체어 신세를 지기 시작한 최영식씨ㆍ병세의 악화로 83년 9월1일 보훈병원에 입원, 투병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육체의 고통도 그의 신앙에 대한 열정만은 식힐 수가 없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해 보니 입원환자 중 그래도 움직임이 가능한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미사참례를 할 수 있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중환자들은 가끔 찾아오는 인근성당 봉사자들의 병문안만이 유일한 희망인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러한 최영식씨의 생각은 입원 후 한 달가량이 지나 바로 실천에 옮겨져 환자들 중 우선 젊은 신자들을 중심으로 신자기도모임을 만들어 매일 저녁 병실에서 묵주기도, 사제를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등 각종기도문을 함께 바치기 시작했다.

그 후 최영식씨의 병실은 저녁마다 휠체어를 탄 신자들로인해 만원을 이루었고, 기도가 끝난 후는 신자들이 7~8명씩 1조를 이뤄, 기도모임에 참가하지 못한 중환자 신자들을 각 병실마다 찾아다니며 서로를 위로, 기쁨을 나누어왔다.

또한 이때부터 최영식씨의 인도아래 영세 입교한 환자, 대세를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은 환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평양이 고향인 최영식씨는 48년도 해방을 맞고 2년 후 월남, 육군에 입대해 보병 제6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6.25기간 중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던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파편으로 인한 부상도 6.25 당시 치열하기로 소문났던 금성전투에서 얻은 것.

전장에서도 출동하기 전『주님 오늘도 우리 부하들이 죽거나 부상당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요』라고 항상 기도를 바쳤다는 최영식씨는 요즘 일부 대학생들이 「6.25는 북침이다」는 등의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가슴 아프다며『6.25는 엄연한 남침이며 전쟁의 비참함과 고통을 역사의 산증인으로써 이들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5.16혁명 직후 육군대령으로 예편,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최영식씨.

『이제는 병원에 수녀님이 계셔서 제가 하는 일이 많이 줄었어요. 또 입원초기에는 환자들이 한 달에 한 번밖에 단체로 미사를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여러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매주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휠체어 없이는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본인의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승화시켜 남은 여생을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최영식씨의 표정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밝아 보였다.

최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