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32)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여정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0-08-11 수정일 2020-08-12 발행일 2020-08-16 제 320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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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느님 가까이로 부르시는 사랑의 표현 
두 번의 꾸르실료 봉사를 하면서 내 어깨에 짊어진 무게와 아픔을 
모두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소리 내어 며칠을 목 놓아 울어봤고
그 순간마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의 따뜻한 품을 느꼈기에 충분히 위로받았어요

남편은 뇌병변으로 인한 좌측 편마비 재활 치료와 고관절 골절 수술로 2년이 훌쩍 넘는 기간을 재활 치료를 하며 병원에서 지내다 얼마 전 퇴원했다. 집에서 생활 속 재활 운동을 하며 통원을 하고 있다. 27년을 함께 살았지만 병원과 집이란 다른 공간에서 각자가 2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맞춰 가는 시간들이 처음인 듯 쉽지만은 않다. 퇴근 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과 가끔은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힘들 때도 있지만 그 순간도 봉헌하면서 이렇게 씩씩하게 이겨 나가는 남편이 참 대견하고 고맙다.

좌측 편마비로 인해 넘어질 듯 불안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마비된 팔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을 받을 때가 많지만 남편은 그런 불편함에 짜증을 내지 않고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연습이 더 필요하다며 걱정스런 눈으로 보지 마라’고 오히려 나를 다독거려 준다. 아프기 전에는 작은 일에도 무척 짜증을 많이 내던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남편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체험한다.

오랜 기간을 병원에서 힘들게 생활한 그 시간들이 남편에게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본인의 것을 비우는 참 귀한 시간이었음을 절감하면서, 나 또한 지금의 남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보는 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성과 함께 깨닫게 된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 고통이 왔을 때 그 고통이 끝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사랑의 시작임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된 지금…. 장마철에 혼자 운전하며 통원 다니는 남편이 때때로 불안할 때가 있지만 ‘이 걱정마저도 주님께 봉헌합니다. 제 마음 아시는 당신께.’하며 남편을 향한 잔소리보다는 주님께 의탁하는 나의 변화에 미소 짓게 된다.

며칠 전 동생처럼 여기는 자매에게서 연락이 왔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이 아파서 조직 검사를 하였더니 림프종 혈액암 4기라 판정받고 치료 중이니 기도를 부탁한다고 담담히 말하였다. “마음은 괜찮아?”라는 나의 질문에 그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니! 꾸르실료 봉사자로 권유받고 봉사를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겠어요? 두 번의 꾸르실료 봉사를 하면서 내 어깨에 짊어진 무게와 아픔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 소리 내어 며칠을 목 놓아 울어봤고, 그 순간마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의 따뜻한 품을 느꼈기에 충분히 위로받았어요. 꾸르실료 봉사를 하면서 의탁이라는 것도 알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에게 이 시간도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분명히 주시리라 믿기에 걱정이 안 돼요.”

그 대답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신 후 하느님의 계획을 펼치신다는 것을 또다시 체험하고, “소화데레사!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부모로서 언제 이렇게 자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보았겠는가. 그러니 끊임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며 마음으로 안아 주었다. 고통은 하느님의 사랑 표현이자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이끄심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들이 결코 힘든 것만이 아님을 그 가족들이 꼭 깨닫기 바라면서 우리가족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프지 않았다면 세상의 소소한 재미에 빠져 무심히 지나쳤을 소중한 것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남편의 아픔을 통해 어느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살아 있는 것. 부부와 부모, 자녀의 입장에서 잣대에 맞추어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서로를 판단하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기도해 주셨던 많은 분들을 통해 ‘나 또한 저분들처럼 되어야지’하고 다짐하였기에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신비를 묵상하면서 오늘도 묵주기도를 바친다. ‘자비의 주님! 아픈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필요한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