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반전 / 배채진

배채진(요한) 수필가
입력일 2020-08-11 수정일 2020-08-11 발행일 2020-08-16 제 320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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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연구실 열쇠를 반납한 후 시작한 경남 하동군 악양면의 지리산 기슭 농사 생활이 올해로 7년째다. 이번에는 고추와 참깨, 들깨, 토란을 다른 해보다 더 많이 심었다. 7월 초순까지만 해도 비교적 가문 편이어서 하순의 뙤약볕이 예상되기에 햇볕에 말리는 태양초 고추 생산을 제법 기대했었다. 태양초 고추 그거, 자급자족 소규모 채소 농부의 소박하지만 찬란한 꿈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하늘은 나의 이 말 이후 “그리되나 두고 봐라!”라는 듯이 날씨를 바로 반전시켜 버렸다. 내리길 바랄 땐 햇볕이더니 정작 따서 말려야 할 지금은 폭우가 나날이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말리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따지도 못하고 있다. 건조가 관건인 여름작물 수확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틈틈이 수확한 고추와 참깨, 토란 줄기 등을 황토방에 널고는 불을 잔뜩 때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황토방은 여름에도 우리가 자는 방인데.

그러다가 이것 봐라, 어제와 오늘 하늘이 열리고 해가 보이는 게 아닌가.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옛날식 기도문으로는 “천주께 감사!”다. 집사람과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참깨를 찌고 고추를 따며 토란 줄기 껍질을 벗기는 등 집사람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나는 팔다리가 저려 코에 침을 발라야 할 정도로 예취기 메고는 풀들과 씨름했고.

그런데 이건 또 뭐람? 서너 시간 밭일을 마친 후 지친 다리를 끌며 올라와서 보니 승용차 보닛 위에 고추 광주리가 두 개나 얹혀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막 구입한 새 차인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저 위에까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건조의 급박한 사정을 아는지라 입 밖에 나오려는 말을 꾹 삼켰다. 아무튼 날씨가 반전을 거듭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반전은 사건을 예상 밖의 방향으로 급전시켜 충격을 줌으로써 독자에게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주인공의 운명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갑자기 바뀌거나 불행에서 행복으로 역전되는 구성 방식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론이다. 그래서 ‘반전’과 ‘발견’은 무지의 상태에서 깨우침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 된다.

지금 전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반전 사태의 늪에 빠져 있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에도 이는 그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가르는 분기점이 되리라고 한다. 소비시장에서 이미 시작된 비대면 접촉(언택트·Untact) 거래 방식이 이 사태를 계기로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될 터인데 특히 대표적인 대면 접촉(컨택트·Contact) 조직인 종교계는 어느 분야보다 충격과 혼란이 크리라는 것이다. 가장 큰 지진과 해일을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모여야 미사도 성사생활도 가능할 텐데 모이면 안 된다고 하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또 없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발견’ 즉 식별의 지혜가 필요하다. 시대가 주는 징표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제도교회적 차원에서건 개별 신앙적 차원에서건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는 준엄한 음성이 그 반전 속에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제도교회 책임자들의 고민이 클 것 같다. 우리 개별 신앙인들도 일상에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대안적 신앙생활은 무엇인지, 생활 속에서 참된 신앙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그분의 음성에 더욱 귀를 기울일 때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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