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아랫목 같은 가족 / 정현희 수녀

정현희 수녀(‘꿈사리공동체’ 시설장)
입력일 2020-08-04 수정일 2020-08-05 발행일 2020-08-09 제 320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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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사리 가족의 최강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가족과 맛있는 요리를 해서 함께 먹는 것이다. 자신의 지친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꿈사리 가족들과 함께 요리하는 순간은 최고 행복한 시간이다. 특히 수녀들이 해 주는 음식은 고향의 맛을 대신할 수 없지만, 하늘나라나 북한에 계신 엄마에 대한 향수를 애틋하게 불러일으킨다. 아래 글은 H여대에 다니는 해윤이의 글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탈북자”라고 부른다. 한국에 입국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수녀님 한 분이 집을 찾아오셨다. 그날 수녀님은 앞치마를 두르시고 저녁 식사로 부대찌개를 끓여 주셨다. 그때 처음 부대찌개를 먹었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맛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맛, 그것은 엄마 손맛이었다. 사실 나의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기에 엄마의 손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왠지 첫술을 뜨는 순간 엄마의 맛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우린 이미 가족이 됐다.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와 함께 나랑 같은 환경에(무연고 탈북 청소녀) 있는 4명의 예쁜 여동생들도 생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녀님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따뜻한 밥을 해 놓으시고 우리가 늦어도 꼭 기다려 주신다. 나는 수녀님들이 밥해 놓고 기다리신다는 전화만 받으면 지하철역에서 정신없이 뛰어온다. 마치 유년 시절 어린아이처럼 (중략) ‘행복’이란 지친 날 따뜻한 밥 해 놓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북에 가족을 두고 왔지만 나를 기다려 주는 더 큰 가족을 만나서 행복하다.

나는 상채기로 멍든 아이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려고 요리를 자주 한다. 그중 아이들이 즐겨 먹는 최고의 요리는 유부초밥처럼 생긴 북한 음식 ‘두부밥’이다. 아직도 내가 만든 두부밥은 아이들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향의 음식을 만드는 나의 마음과 정성에 감동해 식탁은 이미 진수성찬이다. 우리 모두는 먼저 온 통일을 맛보며,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간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올여름, 우리 꿈사리 아이들은 K팝이 좋아 무작정 한국을 찾아 왔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소녀 로레리를 위해 자신의 방을 내어 주고, 벅찬 자신의 학업 중에도 한국말을 못 하는 제3국 출생 막내 지희에게 한국말과 한국의 문화를 알려 주려 시간을 쪼갠다. 자립한 희윤이는 어린 자식들의 생활비를 부탁한 재소자에게 기쁜 마음으로 후원금을 매월 넣어주고 있다.

권미경 작가가 「아랫목」이라는 책에서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은 바로 가족”이라고 말한 것처럼 꿈사리공동체는 가장 아름다운 가족을 만들어 가는 따뜻한 아랫목이다.

정현희 수녀(‘꿈사리공동체’ 시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