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그냥 잘해주고 싶었지요” / 신천연 명예기자

신천연(사비나) 명예기자
입력일 2020-07-21 수정일 2020-07-21 발행일 2020-07-26 제 3205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길을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았수? 혹시 이 동네에 손뜨개질하는 곳이 있을까?”

머릿속으로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상가 건물 5층에서 본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네요. 손으로 뜨개질을 하면 치매에 안 걸린다고 해서 해 보려고 하는데 요즘은 뜨개질 하는곳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지팡이도 짚고 동네도 익숙해 보이지 않아 내친김에 동행하기로 했다. 연신 바쁠 텐데 마음 써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걸어가는 동안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할아버지가 오랜 치매로 돌아가신지 이제 1년이 됐고, 살던 집을 정리하고 딸과 함께 살려고 한 달 전에 이사를 왔다고 한다. 세상에 병중에 제일 몹쓸 병은 치매라고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신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듯했다.

“자식들은 엄마 힘들다고 요양시설로 모시자고 했는데 내가 반대했지요.”

“3년 동안 대 소변 받아내며 살았네요. 그래도 갈 때는 너무 쉽게 휭하니 가더라고요.”

“평생 나한테는 고운 눈길 한번 안주던 사람인데. 그냥 잘해주고 싶었지요. 내 손으로 보내고 나니 마음은 편해요.”

할아버지는 햇살 좋은 가을날 아침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손 한번 잡아 주더니 그날 오후에 잠자듯 편안하게 돌아가셨단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는데 왜 그리 서럽던지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우셨단다. 자세한 말은 안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 때문에 평생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사신 것 같았다.

만약 그때 자식들 말 따라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냈으면 지금 내 마음이 이리 편하겠느냐고 하며 웃으신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 속에서 구구단부터 외운단다.

이일은 이, 이이는사…

그리고​는 다시 거꾸로 구구 팔십일, 구팔이 칠십이…

구구단을 다 외우고나면 당신의 이름과 집주소, 전화번호 다음으로는 큰아들, 작은아들, 딸…

줄줄이 말씀하시는 순서가 이제는 아주 습관이 된 것 같다.

마침 내 기억이 맞아 손뜨개질하는 곳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그냥 잘해주고 싶었지요.”

그냥 잘해주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조건도 대가도 어떠한 의미도 따지지 않고 그냥 잘해 주고 싶은 것 그건 분명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라’ 늘 어려운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잘해주면 되는거구나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랑은 그냥 잘해주는것!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느님께서 물으셨다.

“평안하냐?”

“나는 너에게 늘 그냥 잘해주고 싶단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신천연(사비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