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텃밭일 / 이승남

이승남(율리아나) 시인
입력일 2020-07-21 수정일 2020-07-21 발행일 2020-07-26 제 32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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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비가 내리더니, 정원 가장자리 텃밭에 심었던 작은 씨앗들이 드디어 아주 여린 싹을 틔웠다. 아무리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정성을 들여도 더디기만 했던 기다림이 하늘의 봄비를 받아 품고, 선선한 바람과 간간이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에 잠기더니 마침내 파릇한 생명이 돋는다.

그러고 보면 이 작은 텃밭은 성사의 은총을 체험하는 나만의 지성소다. 거칠고 단단해진 흙을 고르면서 세월에 굳어진 나의 마음도 하나둘 풀어지고, 잡초를 뽑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니 그 모습은 마치도 겸손되이 기도하는 구도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게다가 보드라운 흙 속에 잠겼던 딱딱한 씨앗에서 연하디 연한 새싹이 움터 나와 세상에 그 희망을 드러낼 때면 그동안 기다려 왔던 나의 마음은 환하게 실현되는 기도가 되고 사랑이 되고 기쁨이 된다.

텃밭은 분명히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지만, 신앙인에게는 이렇듯, 영적인 체험의 장소가 된다. 아마도 생명을 다루는 노동이 곁들여지고 하느님의 품과도 같은 땅을 만나는 시간이라서 그럴 것이며, 당연히 자신의 땀과 정성을 쏟아내야만 하는 조건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 만이 비로소 풍성한 텃밭이 된다”는 신앙고백이다. 이는 곧,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말과 같은 이치이다. 어찌 인간의 정성만으로 자신의 죄를 씻고, 영혼을 정화하며 새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텃밭일도 나의 정성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비와 바람과 햇볕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고 묵상하면서 내적 신앙을 성숙해 나아가는 영적인 시간이기에 소중하고 보람되며 착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이른 봄에 씨앗을 뿌리고, 때론 모종을 심고 가꾸어 양식을 구하는 일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여길지 몰라도, 사실 작은 씨앗 하나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숭고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텃밭일은 신비롭고 놀라운 기쁨의 연속이다. 그러니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 하나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었던가?” 라고 우리를 자세히 일깨워 주는 푸르른 스승과 더불어 살아가니 좋은 일이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부활신앙이 더욱 단단해짐을 느낀다. 씨앗이 땅에 묻힘은 죽음과 무덤이며, 새싹은 부활이기 때문이다. 성치 않은 나의 몸으로 텃밭을 일구며 흘리는 땀방울이 땅에 떨어져 스며듦도 죽음이며 무덤이고, 그렇게 비옥해진 땅에서 얻어진 싱싱하고 푸르른 푸성귀는 내 식탁에 귀하게 오신 부활이며 성체이다. 그 구원의 양식으로 나의 병든 육신은 다시 위로를 받고 생명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그 순간은 바로 나의 비천한 식탁 위에서 신앙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요, 감사와 찬미가 울려 퍼지는 기쁨의 성찬례이다.

이제 빼곡하게 자란 채소를 솎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서로 몸이 부대껴서 어느 한쪽은 이미 상해 버렸거나 짓물러 버렸다. 채소 사이사이를 조심스레 솎으며, ‘주님! 지금 솎아진 이들은 심판받은 것일까요, 선택받은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내 식탁에서 건강한 한 끼 밥상을 채우는데 일조하리라 믿는다. 또한 나의 구원을 위해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채소들일 것이니, 나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선택받는 여정이길, 이른 아침 단단하고 부드러운 초록의 힘을 빌려 두 손 모으며 소망해 본다. 아멘!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남(율리아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