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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07-21 수정일 2020-07-21 발행일 2020-07-26 제 32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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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농축 우라늄이 사용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됐다. 그리고 3일 후에 플루토늄을 이용한 또 다른 핵무기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이제 막 실험에 성공한 핵무기까지 동원된 폭격으로 수십만의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미국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무기를 실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원했던 ‘무조건 항복’을 조기에 얻어냈다.

그런데 원자폭탄의 사용을 승인했던 트루먼(Harry S. Truman)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1945년 8월 19일을 ‘기도의 날’(Day of Prayer)로 선포한다. 독실한 신자였던 트루먼에게 전쟁의 승리는 신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요청한 것이다. 트루먼과 더불어 많은 미국인들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핵무기를 주셨다는 사실을 믿었고, 길고 처참했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이 무서운 무기를 사용한 것을 지지했다. 더 나아가 강력한 원자폭탄 덕분에 앞으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폭탄의 직접 피해뿐 아니라 끔찍한 방사능 후유증까지 보도되면서 여론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여성과 어린이의 목숨까지 살해한 거대한 폭력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폭군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핵무기 사용의 목적이 쉽게 정당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핵무기에 대한 입장에 따라 미국의 그리스도교는 둘로 나뉘게 된다. 일부 종교인은 여전히 ‘정의의 미국’에게 핵무기를 주신 신의 섭리를 믿었지만, 진정한 평화를 고민했던 신학자와 지식인은 그 원자폭탄의 사용을 단죄하기 시작했다.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미국 종교계의 반대는 한국전쟁에도 직접 영향을 미쳤다. 중국군 참전으로 트루먼이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암시하자 많은 성직자들은 반대 의견을 담은 전보를 그에게 보냈다. 또한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미국교회협회’(NCCC)와 같은 단체는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는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는데,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이러한 노력을 “미국을 사로잡은 히스테리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종교적 저항”으로 평가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는 올해,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에는 전쟁을 끝내고 핵무기를 반대하는 특별한 캠페인이 시작된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7대 종단과 수많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이 땅의 평화를 위한 전세계인의 지지를 당부할 예정이다. 무기로 얻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신앙인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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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