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자연농법에 앞장서고 있는 도시농부학교 파주 박달산 텃밭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7-14 수정일 2020-07-15 발행일 2020-07-19 제 320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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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이 힘 합쳐 완성하는 건강한 농사를 위해
도시농부학교 1년 수료 후 텃밭 농사
비료·농약없이 자연 순환 원리에 의지
풀 무성하게 자라며 땅 덮어 퇴비 역할
텃밭, 지역사회 생태적 거점 되길 기대

경기북부 도시농부학교 파주 박달산 텃밭 입구에 위치한 안내문.

“우리는 생태계가 이산화탄소의 분해, 물의 정화, 질병과 전염병의 통제, 토양의 형성, 배설물의 분해,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거나 모르는 많은 다른 작용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역량과 존재에 앞서는 실재를 토대로 살고 활동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140항)

생태적 회개를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그 안에서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농민 주일을 맞아 교황의 가르침과 지구의 신음에 응답하고 있는 의정부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회(위원장 김규봉 신부) 소속 경기북부 도시농부학교 파주 박달산 텃밭을 찾았다.

■ 자연농법을 위한 다섯 약속

‘땅갈이를 하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제초와 비닐 덮개를 하지 않습니다.’

박달산 텃밭 입구 안내판에 적혀 있는 자연농법을 위한 다섯 가지 약속이다.

농사를 짓는데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초도 안 하고 비닐 덮개도 씌우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작물 재배가 가능할까? 실제로 박달산 텃밭에는 잡초를 뽑지 않아 작물 주변에 무성한 풀이 쓰러져 있다.

자연농법에서는 잡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잡초는 없어져야 한다는 뜻을 지니지만 자연농법에서 보면 풀은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다. 다만 풀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작물의 광합성을 방해한다면 뽑지 않고 꺾어 준다.

풀을 뽑지 않으면 풀은 땅을 덮어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퇴비 역할을 하며 미생물의 번식을 도와 토양을 살린다. 또 곤충들이 풀을 먹으면서 농작물이 입는 피해도 적다. 따라서 자연농법에서는 제초와 비닐 덮개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비료를 사용하면 질소질을 과다하게 공급해 토양을 약하게 한다. 자연스레 병충해에 취약해지고 독극물인 농약을 사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연속된다. 자연농법은 이 모든 과정을 끊고 자연 순환 원리에 내맡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풀은 무성하게 자라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사는 숲 생태계와 비슷한 모습이 된다. 박달산 텃밭의 자연농법은 바로 이러한 숲 생태계에서 동기를 얻은 것이다.

박달산 텃밭에 사용하는 도구들. 텃밭에서는 자연농법에 따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연농법으로 재배되고 있는 박달산 텃밭의 고구마.

■ 도시농부

경기북부 도시농부학교 파주 박달산 텃밭. 박달산 텃밭은 도시농부학교다.

도시농부학교는 말 그대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소규모 텃밭을 운영하는 장소다. 도시농부학교의 1년 과정을 수료하면 개인 텃밭 10평(약 33.06㎡)이 주어진다. 임대료는 평당 5000원. 수입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자연농법에 기반한 도시농부학교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땅을 빌릴 수 없다.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한 도시농부들은 개인 텃밭에서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해 공동 텃밭도 함께 관리한다.

아울러 이들은 토종종자 보존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토종종자는 특정 지역에서 자연이나 인간에 의해 점진적으로 선택된 종자를 말한다. 즉 그 지역 환경과 여건에 맞는 종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형 농업의 확산과 상품화된 씨앗의 재배확대 등이 이뤄지면서 토종종자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달산 텃밭 도시농부들은 전업농이 아니기 때문에 토종종자 사용을 최우선하고 있다.

또한 농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썩을 수 있는 마끈을 사용하는 등 생태계 보존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

박달산 텃밭 도시농부 이문형(이시도로)씨는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받은 게 참 많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돌려드리고 싶다”며 “특히 미래 세대가 풍요로운 자연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자연농법에 입각해 도시농부의 삶에 투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의정부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장 김규봉 신부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곳으로”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 사제의 역할 아닐까요.”

박달산 텃밭을 관리하고 있는 김규봉 신부는 모든 목적을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곳’에 맞췄다.

의정부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장, 지역복음화사목 담당, 전곡본당 협력 사제, 경기북부 도시농부학교장, 의정부양주동두천 환경연합 공동의장 등 현재 김 신부가 교회 내외에서 맡고 있는 직책은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 정도다.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직책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넘어 지역사회 안에서 하느님 뜻을 실현하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죠.”

김 신부는 2018년 2월 지역복음화사목 담당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연농법을 진행했고, 박달산 텃밭을 지역사회의 생태적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상황에서 후세에게 생명이 깃든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고민과 함께 나온 것이 자연농법이다.

“관행적으로 해 오던 농법은 기본적으로 기계를 사용하면서 농약과 비료를 줍니다.

농약은 독극물이죠. 비료도 질소질이 과다하면 질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기농인데 유기농도 화석연료를 이용한 기계를 사용하고 비닐 덮개를 씌웁니다. 지속가능성의 고민 끝에 파종부터 수확까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비닐도 덮지 않는 자연농법을 선택했습니다.”

아울러 김 신부는 도시농부학교를 진행하면서 박달산 텃밭을 지역사회의 생태적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 문명의 모순들은 도시에 많이 집중돼 있습니다. 그런 폐해를 아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옵니다. 자연원리에 순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이죠. 앞으로 이곳에서 시민사회 단체와도 연대해 생태관련 영화도 보고 강의도 할 예정입니다. 지역사회의 생태적 거점으로 아주 좋은 곳이라 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은 곳이 되겠죠.”

김 신부는 박달산 텃밭에 있는 3개의 논을 성가소비녀회 수녀들, 의정부교구 고양 주엽동본당 신자들과 각각 하나씩 나눠 농사를 짓고 있다. 김 신부는 무엇보다 사제의 노동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사제들은 관리자의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텃밭이라도 가꾸며 노동현장, 삶의 현장에서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함께 땀을 흘릴 때 노동의 가치와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위대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