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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올 3월 취임한 ‘최종 심판자’ 노태악(프란치스코) 신임 대법관

정리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7-07 수정일 2020-07-13 발행일 2020-07-12 제 320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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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겸손, 공평한 판결, 생명 문제… 주님께서 주신 기쁜 소명”
법조인으로 30년 ‘한 길’… 약자 배려한 판결 힘써
겸손한 마음과 공평의 자세를 삶의 신념으로 여겨
생명대학원 공부하며 사형제·낙태죄 등에도 관심
“좋은 법관이면서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 되고 싶어”

노태악 대법관은 신앙을 가지면서 사랑과 겸손, 공평한 판결을 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생명 문제에 대한 관심까지 갖게 됐다고 말한다. 사진 박원희 기자

국내 13명뿐인 ‘최종 심판자’, 법에 따라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대법관’. 누구보다 막중한 사명을 띤 이들 가운데에도 가톨릭 신자가 있다. 올 3월, 30년 넘는 법조계 생활을 거쳐 최종 심판자로 임명된 노태악(프란치스코·57·서울 방배4동본당) 신임 대법관이다. 앞으로 6년 동안 대법관으로서 ‘사도법관’(使徒法官)의 길을 걸어갈 그를 만났다.

◎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 일시 : 2020년 7월 2일

◎ 장소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정치·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을 담당하는 대법관이 되셨습니다. 중차대한 일을 맡게 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노태악 대법관(이하 노 대법관) : 대법관이 하는 일은 모든 법관들이 하는 일입니다. 다만 최종적인 판단을 합니다. 능력에 비해 무거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국민의 권리와 소수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 국장 : ‘꼭 대법관이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노 대법관 : 없었습니다. 법대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고시 공부를 하고 운이 좋아서였는지 큰 고생하지 않고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0년 법관으로 임관하면서 ‘꼭 뭐가 돼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장 국장 : 30년 넘게 한길만 걸어온 정통 ‘법조인’이십니다. 동기가 궁금합니다.

▲노 대법관 : 처음부터 정의를 이루겠다든가 하는 동기는 없었습니다. 어릴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 경영대를 택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당시엔 공부하면 으레껏 법대에 가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법관이 됐습니다. 일을 하면서 제가 하기엔 무겁고 두렵다고도 여겼지만, 지금은 할 만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 국장 :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판결이라든가 소방관 산업재해 관련 판결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배려한 판결을 많이 내리셨습니다.

▲노 대법관 :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모든 법관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 사회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 사회’로, 다수결로 소외되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분명 생깁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게 사법의 진정한 속성이고 의무이며, 그것이 바로 판사, 법관들을 선거로 뽑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 국장 :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무엇입니까.

▲노 대법관 :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으로 사망한 소방관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1심에서 (공무 수행과 발병) 인과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는데, 항소심에서 저희가 추가 심리로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받는 등 적극적으로 접근·해석해 (공무로 인한 사망을) 인정했습니다.

-장 국장 : 이제 신앙 이야기입니다. 언제 ‘신앙인’이 되셨습니까.

▲노 대법관 : 2008년입니다. 2009년까지 7년 동안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했는데 주로 형사 재판을 했습니다. 피고인은 부인하는데 증거를 보면 “당신이 범인”이라 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는 “저 사람이 범인”이라는데 증거를 보면 아닐 수도 있기에 범인일 수도 있는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는데 참 괴로웠습니다. 그게 쌓이면서 오싹했습니다. ‘재판이 틀리면 어떻게 하나, 당사자에겐 큰 아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도 혹시 잘못하면 죄를 고백하고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장 국장 : 법관으로서 갈등하면서 인간으로서 불완전함을 인정하게 됐고, 절대자에게 귀의하신 겁니까.

▲노 대법관 : 그렇습니다. 마침 그때 서울 가톨릭 법조인회에서 예비신자 교리반을 모집한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2008년 7월 신청해서 9월부터 매주 월요일 한 시간 반씩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용이 좋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0회 수업 개근했습니다.

-장 국장 : 가족들도 신자이십니까.

▲노 대법관 : 모친은 독실한 불교 신자, 제 처와 아이들은 가톨릭 신자입니다. 아이들은 서울 계성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첫영성체를 했고, 처는 첫애가 세례를 받을 때 같이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세 명인데 막내는 모태 신앙인입니다.

-장 국장 : 가장 나중에 신앙을 얻으셨습니까.

▲노 대법관 : 네. 제가 세례를 받지 않았을 때, 어느 날 같이 가족과 미사를 참례한 때가 기억납니다. 참례자들이 하는 대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했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를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게 뭘까’하는 찰나에 예비신자 교리반 일정이 겹쳤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가톨릭의 이성적 측면이 궁금해 책도 보고, 꾸르실료도 수료했습니다. 휴가를 내고 다녀온 3박4일 경험이 긍정적인 충격이었고, 기도하면서 마음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장 국장 :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택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노 대법관 : 아내의 세례명 ‘프란치스카’를 따라 ‘프란치스코’로 했습니다.

-장 국장 : 가톨릭 신앙을 가진 법조인으로서 대법관님의 신념과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노 대법관 : 30년 넘게 쭉 하면서 판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겸손’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사자들보다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는 판사가 판결하는 것이기에 마음을 열고 겸손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평’입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진정한 평등을 이뤄야 하고, 당사자가 또 다른 상처를 입어선 안 되기에 양쪽 입장을 똑같이 들어야 합니다.

-장 국장 : 겸손과 공평이라는 신념에 신앙도 영향을 미쳤습니까.

▲노 대법관 : 물론입니다. 가톨릭에서 ‘사랑과 겸손’을 많이 배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제일 존경하는데, 그분의 의연함과 소탈함, 특히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제대로 사랑하는 게 어렵지만, 그만큼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겸손’은 저도 인간이라 틀릴 수 있기에 절대자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틀릴 수 있기에 그때는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하고 기도합니다.

-장 국장 : 신자가 됨으로써 더 신중하고 겸손하게 주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공정한 판결을 하실 것 같습니다. 최근 염수정 추기경님을 예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노 대법관 : 염 추기경님은 제가 세례를 받고 이어 바로 견진성사를 받을 때 집전하시기도 하셔서 뵙고 왔습니다.

-장 국장 : 생명의 수호자들을 양성하는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2기 출신으로, 생명윤리학 석사 학위까지 받으셨습니다. 정말 바쁘실 텐데 ‘생명인’까지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 대법관 : 좋아서 했습니다. 예비신자 교리 수업 때 생명대학원을 알게 됐고 커리큘럼을 보니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야간 수업이라 참석할 수 있고, ‘황우석 사태’, ‘김 할머니 사건’ 등 생명이 어디에서 탄생했는가부터 죽음까지 많은 일이 있었던 무렵이라 배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장 국장 : 생명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판결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노 대법관 : 알게 모르게 분명 있을 겁니다. 제가 처음엔 사형 선고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지만, 참 괴로웠습니다. 사형제는 폐지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노태악 대법관이 6월 26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환담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이동익 신부 제공

-장 국장 : 신자가 되시면서 법조인에 더해 생명인까지 여러 은총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노 대법관 : 신앙을 가지면서 사랑과 겸손, 공평한 판결을 내리려는 노력, 이제는 생명 문제에까지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기쁘고 좋은 숙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또 다른 은총과 소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장 국장 : 올해 말까지 낙태죄 관련법을 제·개정해야 합니다. 신자 법조인, 생명의 수호자로서 대법관님 의견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 대법관 : 가능한 한 생명이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법제도도 중요하지만, 교육도 중요합니다. 많은 분이 컴퓨터가 멈추면 쉽게 껐다 켜는 ‘재부팅’을 하는데, 생명조차 복잡하고 골치 아프면 없애고 ‘재부팅’하자는 생명경시 풍조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미혼모가 낙태하는 이유도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에, 이 부분도 해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장 국장 :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노 대법관 : 결국 법관으로서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오래 걸리겠지만, 재판 절차와 판결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재판 절차 등을 비춰 봤을 때 왜 불리한 결론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당사자가 납득하도록 판결로 설득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요. 쉽진 않겠지만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장 국장 :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노 대법관 :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법조계를 이끌어 나가는 분들 사이에 그런 모습이 보이는 것 자체가 불안합니다.

-장 국장 :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 올바른 판결을 해야 하는 ‘법조인’, 생명수호에 앞장서야 할 ‘생명인’으로서,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공정과 정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요.

▲노 대법관 : 법관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존경하는 ‘사도법관’(使徒法官, 장면 전 국무총리가 예수의 열두 제자 같다며 붙여 준 별칭) 김홍섭(바오로) 판사님 말씀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김 법관님도 개신교에서 불교, 결국 마지막에 가톨릭으로 귀의하셨는데,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좋은 법관이기 이전에 또는 그와 동시에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 친절함과 성실함에는 사랑과 겸손도 다 포함되고, 저를 포함해 모든 분이 그렇게 살아가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노태악 신임 대법관은…

1962년 11월 20일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81년 2월 계성고등학교, 1985년 2월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4년 10월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연수원 16기)해 1990년 3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30년 동안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북부지방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1996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2011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생명윤리(생명문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리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