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 / 임미정 수녀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입력일 2020-07-07 수정일 2020-07-08 발행일 2020-07-12 제 3203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몇 년 전에 마포구에 위치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 귓가를 적시며 박물관 전체를 잔잔히 감싸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자메이카의 평화와 저항의 상징인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 입니다. 노래의 ‘Woman’은 가난한 자국 자메이카를, 또는 착취당하는 모든 민중을 상징하는데 가사 전반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애도, 그리고 희망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박물관 1층 ‘세계분쟁과 여성폭력’ 상설관에 설치된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관람자들은 전쟁의 참화와 성착취로 희생된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기억하며 더 숙연한 마음으로 관람하게 됩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육과 기억의 공간으로, 할머니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또 교육을 통해 미래세대와 할머니들이 함께 손잡게 하고자 2012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건립 후 많은 학생, 청년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를 통해 인권과 평화의 감수성을 기르는 훌륭한 교육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노래가 흐르는 1층 상설관 옆에는 ‘나비기금’에 대한 안내가 나옵니다. 2012년 세계여성의 날, 故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일본정부로부터 법적배상을 받으면 자신들과 같이 고통을 겪는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전액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셨고, 이 뜻을 이어받아 ‘나비기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비기금으로 콩고와 베트남 등의 세계 많은 여성들을 돕고 있고, 이는 피해할머니들이 이제는 당당히 희망의 주체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거룩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세대에 희망이 되는 ‘인권평화교육’의 현장이 또 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있는 평화로에서 30여 년간 매주 진행되어 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입니다. 저는 수요시위에 참여할 때마다, 좋은 희망의 메시지를 얻습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발언하고, 시위현장을 생기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학생과 청년들을 보면서 비록 할머님들은 점점 우리 곁을 떠나지만, 이 빈자리를 이들이 이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뜨거운 감동과 희망을 안고 돌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최근 할머니들과 활동가들, 학생들이 함께 일궈온 인권과 평화의 생생한 현장인 수요시위가 일부 몰지각한 이들로부터 훼손되고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저희 여성수도자들은 1995년부터 25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정기수요시위에 연대해왔습니다. 1991년 처음으로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 이후, 수도자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손을 잡고 연대해야 함을 결의하고, 먼저 1995년 12월 4~5일에 많은 수도자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밤새워 ‘정신대(당시 용어) 피해여성을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어 바로 일본대사관까지 침묵시위로 행진하여 일본총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고, 다음날인 12월 6일 제1252차 수요시위부터 지금까지(2020년 7월 1일, 1446차)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본에 의한 전쟁범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용기 있게 증언하신 할머님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며, 할머님들의 요구인,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 진정한 사과와 법적배상으로, 할머님들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연대하고자 합니다.

가끔 수요시위에는 일본에서 온 고령의 평화활동가들도 참여하는데, 수요시위에 나온 학생들을 늘 부러워하고 고마워합니다. 이 학생들이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인권평화활동가들과 연대하여 전쟁이 멈추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거나 폭력을 쓰지 않고, 누구나 보편적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일꾼으로 우뚝 서리라는 희망을 꿈꿔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픔을 딛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고자 혼신을 다한 여성인권평화 운동가 할머님들과, 할머님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많은 활동가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노래의 마지막에 나오는 희망의 가사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No, woman, no cry!

(다 잘 될 거예요! 그대여, 울지 말아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