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주신 선물 / 김애리

김애리(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야탑동본당),
입력일 2020-07-07 수정일 2020-07-07 발행일 2020-07-12 제 320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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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사실은 수없는 경고와 위험 사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며 맞게 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중대한 상황 앞에서 우선 주어진 생활에 적응하기도 버거워 전쟁을 겪는 듯 한 불안함이 태풍 몰아치듯 온통 마음을 흔들어댔다.

더욱이 미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 앞에서는 단죄를 받는다는 느낌마저 엄습했었다. 학생들과 생활하기에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며 그렇게 큰 감사 없이 습관적으로 얼굴 맞대고 수업하던 학생들이 나에게 주신 선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손도 잡고 눈도 맞추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고 때론 얼싸안고 함께 웃고, 안아주며 눈물 닦아주기도 하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와 위안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그 따뜻함에 의지하며 살았던 귀한 선물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일과 이웃들이 매우 소중하고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불필요한 것들에게 휘둘려 필요한 것들을 돌볼 틈 없이 지냈던 모습도 깨닫는다.

요즘 동네에 핀 담쟁이넝쿨을 올려다보며 푸르른 잎사귀 넝쿨 군대의 지혜에 놀란다. 담쟁이는 나타난 장애물인 벽 앞에서 시끄럽게 난리 치지도 않고 우왕좌왕 왔다 갔다 하며 누렇게 시들지도 않은 채 평소 모습 그대로 조용히 서로의 초록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그 벽을 묵묵히 함께 끝까지 넘는다. 장애물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이겨내는 모습을 닮고 싶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보내며 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에 깨어 있어야 함을 기억하며 작은 생활 실천부터 시작했다. 우선 집의 ‘미니멀 라이프’(최소화한 삶)을 시작했다. 결단과 가족의 협조가 필요했다. 필요와 불필요를 많이 묵상하게 되었다. 비움과 나눔의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비움의 여백 없이는 나눔의 공간이 보이지 않음을 생활 실천 안에서 깨닫는다. 대충 대충이 아닌 철저하게 실천에 옮길 일이 아주 많다. 6장 246항이나 되는 회칙이지만, 함께 조금씩 실천에 옮기는 일에 동참하며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 라는 재앙 앞에서 선물로 주신 이웃과 공동체의 집인 지구를 잘 지키고 있느냐고, 우리 후손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으냐고 물으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난다. ‘담쟁이넝쿨이 되어 저희에게 주신 선물을 꿋꿋이 지키고 싶다’고 그분의 도우심을 청한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힘과 용기를 주시는 고마우신 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

김애리(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야탑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