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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상] 진퇴양난의 극복 - 교회경영 사업체의 노사분규를 보고/고건상 신부

고건상 신부 · 성베네딕또회
입력일 2020-07-07 수정일 2020-07-07 발행일 1989-05-28 제 165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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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에는 항상 귀찮게 불어다니는 진퇴양난(DILEMMA) 의 어려움이 있다. 특히 이 딜레머는 고도의 지혜와 함께 정확한 판단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풀기가 더욱 어렵다.

최근 나는 노동재의 현장에서 몇몇 노동조합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새삼 이 딜레마에 봉착했다.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이 딜레마의 현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3자인 내가 해결의 도움을 주지 못함은 명백했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나를 더욱 괴롭혔던 것은 이 딜레마가 경영자인 교회 측과 노동자인 신자 측과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 빨리 변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실감하고 있다. 교회 또한 무섭도록 빨리 변하고 있고 앞으로의 변화속도는 더욱 빨리 지리라는 것 또한 누구나 실감하고 있다. 교회 또한 무섭도록 빨리 변하고 있고 앞으로의 변화속도는 더욱 빨라지리라는 것 또한 누구나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교회의 지시에 맹목적이라 할 만큼 절대 순명해 왔던 신자들도 이제는 서서히 비판의 안목으로 교회를 보기 시작했고, 그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교회가 신자들로부터 직접 비판을 쉽사리 수용하기에는 마음의 자세가 충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구태의연한 과거의 지시일변도가 통하던 환상 속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교회도 사회 안에 존재하기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선봉자로서 사회화(社會化)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속화(俗化) 되어서는 곤란하다. 교회가 속화와 사회화를 구분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 속에서 봉사자의 위치가 아니라 경영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사회화되기보다 속화될 위험성이 높은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경영진과 노동자간의 극한 대립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교회를 비판하는 신자들의 목소리도 심상치 않은 날카로움을 품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근본적으로 서로간의 「불신」 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불신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듯하다. 국민과 위정자간의 불신, 교사와 학생간의 불신, 교사와 학생간의 불신,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 교회(성직자) 와 신자간의 불신, 남편과 아내간의 불신, 부모와 자식 간의 불신 등등. 정말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좁은 소견인지는 모르겠으나 교회가 봉사자가 아닌 경영자(노동자들이 볼 때는 지배자의 인상을 풍기는 경우를 말함) 로 계속 남아있는다면 이 불신은 급속히 팽창하여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까 두렵다. 아니, 오고 있는 조짐이 분명히 보인다.

교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우리 한국의 정치ㆍ경제적 구조 안에서 경영자로서 남아 있기에는 역부족을 점점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한국의 경우, 때로는 변칙을 사용해야 통하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의 경영자들이 운영의 묘를 살리기 위해 알게 모르게 이 변칙에 동조하다 보면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모순을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게 되며,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불신의 벽이 점점 더 두꺼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의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교회의 경영자들은 『뭐, 나 개인을 위해서 하나. 우리교회의 공동이익을 위해서 하는 거지』 하는 식의 구차한, 아니면 당당한 자기변명을 하게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 모두가 지혜를 총동원하여 의견을 수렴하면 해결책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딜레마를 풀어야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받아들이실 것이다(마태16, 19).

그 해결책은 교회가 평신도 사도직을 활성화하여 성직자일방적인 지시하달식이 아니라함께 나누는 협조ㆍ동참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서서히 경영은 평신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성직ㆍ수도자는 그 본래의 사명인 봉사자로 남아있을 때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다고 본다.

세월이 가면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교회가 이 딜레마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교회는 답답할 것이 없겠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교회는 깊이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고건상 신부 · 성베네딕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