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모님과 함께 ‘달팽이 순례’ 중인 이성만 신부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6-30 수정일 2020-06-30 발행일 2020-07-05 제 320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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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한 발짝 또 한 발 짝 
더디지만 쉼 없는 발걸음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다
참회와속죄의본당 협력사제로서 한반도 평화 위한 활동 고민하다 매일 인근 공원 걸으며 묵주기도
실제 걸은 만큼 순례거리로 환산
평양 장충성당 지나 신의주 도달
“작지만 꾸준한 기도 꼭 이뤄지길”

참회와속죄의성당 인근 중앙공원 살래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흐린 날씨에도 강 건너 북한 마을이 보일 정도로 북한이 가깝게 위치해 있다.

“달팽이는 집을 짊어지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저도 성모님을 모시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발짝씩 걸어가겠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달팽이 순례’를 하고 있는 이성만 신부(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본당 협력사제)는 현재 기도 안에서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매주 토요기도회를 열었던 참회와속죄의본당(주임 권찬길 신부)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2월 말부터 모든 본당 활동이 중단됐다. 이 신부는 평일과 주일 구분이 없을 정도로 단순해진 생활에서 무기력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의미 있는 일을 고민했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제답게 사는 것인지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했다. 그러던 중 성주간을 앞두고 이 신부는 예루살렘에서 성지 주일을 맞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순간 저도 성모님을 모시고 로사리오의 모후가 주보인 평양 장충성당까지 마음속에서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매일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장충성당으로 향했다.

이 신부는 북한이 내려다보이는 참회와속죄의성당 인근 중앙공원 살래길을 걸으며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우리말로 번갈아 가면서 묵주기도를 봉헌했고, 실제 걸은 거리를 순례거리로 환산했다. 허물어진 장충성당을 보수하기 위해 기도로 벽돌도 하나씩 쌓았다. 이 신부는 이번 순례를 위해 묵주도 직접 만들었다.

“성모님, 예쁜 성당 지어드릴게요!”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장충성당까지 직선거리는 약 230㎞. 이 신부는 성모님과 함께 4㎞ 조금 넘는 거리를 매일 걸으며 달력에 기록했다.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이 신부가 걸은 거리는 총 240㎞. 이 신부는 두 달여 만에 장충성당에 도착했다.

“장충성당을 보수하고 성모님을 모셔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지만, 몸은 잘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입천장도 까지고 몸도 굉장히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제가 참회와속죄의성당에 있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달팽이 순례’에 나선 이성만 신부가 6월 18일 참회와속죄의성당 인근 중앙공원 살래길 전망대에서 강 건너 북한을 바라보며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

이성만 신부가 평양 장충성당까지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며 북한교회 순례길을 설명하고 있다.

‘달팽이 순례’를 하며 걸은 거리를 기록한 달력.

북한교회와 북한 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의 중심지인 참회와속죄의성당 전경.

2018년 북한 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순례지로 선포된 참회와속죄의성당은 북한교회와 북한 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의 중심지다.

이 신부는 장충성당에 도착하면서 처음 정했던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하게 경색된 남북관계를 보면서 바로 내려올 수 없었다.

“현재 위기가 고조되는 남북관계 상황을 직면하면서 바로 달팽이 순례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북한 순례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현재는 신의주로 올라왔습니다. 의주성당, 중앙진성당 등 북한에서 없어진 성당 순례에 나섰습니다. 아울러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에서 순교하신 하느님의 종들의 시복시성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약 없는 북한교회 순례에 나선 이 신부는 기도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도가 필요한 곳입니다. 다만 기도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기도가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원하시는 때 그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 시간과 방법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분명히 중재역할을 해주실 것입니다. 달팽이 순례처럼 자그마한 우리의 기도들이 모이면 언젠가 하늘에 다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이 신부는 한손에 묵주를 들고 뚜벅뚜벅 북한교회를 순례한다.

“하느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