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빛을 심는 사람들] 87. 군인성당 민간인신자 권용운씨

박정은 기자
입력일 2020-06-25 수정일 2020-06-25 발행일 1989-05-14 제 1655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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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제ㆍ가족처럼 신병들의 고충상담
도움 베풀다 운영하던 잡화상 문 닫기도
“미사참례 못하는 사병 볼 때 가슴 아파”
전 신자가 군인인 강원도 양구군 백두산성당의 유일한 민간인 신자 권용운(요셉ㆍ47)씨.

교적번호 1번인 권용운씨는 인근의 군부대 및 읍내주민들 모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만인의 「삼촌」이다.

눈 쌓인 아침새벽이나 큰비가 내린 날이면 10리길을 걸어와 어김없이 성당 앞의 비포장도로를 깨끗하게 쓸어 놓는다.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가 군인성당을 고집하는 것은 군복무에 힘쓰는 젊은이들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

『고향을 떠나온 신병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기쁜 일』 이라고 말한 권용운씨는『사병들과 2~3년이 지나면 헤어지는 일이 섭섭하다』 고 덧붙였다.

자신의 군 경험에 비추어 신병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늠하는 그는, 시간이 나면 가늠하는 그는, 시간이 나면 전방인 이곳 양구의 신병들을 면회, 위로를 해주고 있다.

신자 사병뿐만 아니라 비신자 사병까지 누구든지 만나고 이야기하는 그는 항상 성당으로 데리고 온다.

친형처럼, 삼촌처럼 다정하게 어려운 신병의 고충을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신앙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즐겁게 하는 것 뿐』이라며 겸손해 하는 그에게 있어 남을 돕는다는 것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터미널ㆍ부대근처ㆍ작업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병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름을 익히면 꼭 면회를 신청, 관계를 이어간다.

워낙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있는 것마저 내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품으로 원주에서 운영하던 잡화상은 금새 문을 닫고야말았다.

『어려운 사람을 눈앞에 보면서 어떻게 합니까? 자꾸 퍼주다 보니까 가게 운영은 어렵데요』 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한 치의 안타까움도 없다.

그가 생활해오던 원주를 떠나 양구로 들어온 것은 78년.

신앙이 없던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과연 하느님은 계신가하는 의문과 함께 부딪쳐 보리라는 결심으로 84년 영세했다.

『잔손이 많이 가는 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돌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성당에 가서 풀을 베고 이것저것 잡일을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빈축도 많이 샀다』 는 그는 이젠 『모두 이해하고 성당에 관심도 생겼다』 며 기뻐했다.

「마음 좋은 사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불리는 그가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은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

『삼촌이라고 면회신청을 하고 위병소에서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 나오면 혼인시키는 것 보다 더 기뻐요』 라고 말하는 그는 『신자사병이 미사 참례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입원한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모의 병환으로 어려움을 당하자 신자사병들은 묵주기도를 봉헌, 걱정을 했으나 오히려 장본인은 담담히 고통을 받아들이고 사병들을 위로했다.

『계속, 정들면 떠나가는 사병들이지만 백두산성당을 지키고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이라는 그는 『더 나이가 들면 성당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 고 소망을 털어놨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