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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전쟁을 위한 기도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06-23 수정일 2020-06-23 발행일 2020-06-28 제 320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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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 등으로 친숙한 미국의 문학가 마크 트웨인은 말년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비판하고, 반전(反戰) 운동에 활발히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만 이상의 필리핀 국민들이 희생된 미국-필리핀 전쟁 이후, 마크 트웨인은 1905년에 ‘전쟁을 위한 기도’를 집필했는데, 전쟁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풍자한 이 짧은 우화에는 다음의 낯선 문장이 등장한다.

“오, 우리 주 신이시여! 주님을 경모하는 우리를 위해 저들의 소망을 산산이 날려 버리시고 저들의 생명을 시들게 하시고 저들의 비참한 순례가 끝나지 않게 하시고 저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시고 저들의 눈물로 저들의 길을 젖게 하시고 저들의 상처투성이 발에서 흐르는 피로 흰 눈을 얼룩지게 하소서. 우리는 그것을 바라나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께. 곤고한 처지에 놓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당신의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 항상 믿음직한 피난처요 친구이신 주님께. 아멘.”

마크 트웨인 사후에야 출간될 수 있었던 이 도전적인 이야기는 ‘거대한 흥분이 들끓어 오는 시대’가 묘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보내진 후 장엄한 예배가 진행되고, 이때 기괴한 모습의 한 노인이 제단 쪽으로 걸어 나온다. 자신을 신의 사자로 소개하는 노인은 지금 바쳐진 기도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들이 청하는 승리는 ‘적들이 갈기갈기 찢기고, 부상병들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며, 죽은 아들을 부여잡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며, 또한 ‘적군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며 생명이 시들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모든 시대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간구했던 ‘전쟁을 위한 기도’는 한국전쟁에서도 바쳐졌다. 1950년 여름, 평양의 상황을 알려주는 기록을 보면,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기독교 궐기대회가 있었고, 북반부 기독교 각 교회에서 ‘전승기원례배’가 진행됐던 사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기도’는 남한에서도 봉헌됐는데, 1950년 12월 8일에는 전국적인 신자들의 기도와 함께 명동대성당에서 전승기원미사가 거행됐다. 동족이 서로를 죽였던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과 북의 종교인들 역시 전쟁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해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기도’를 더욱 간절히 바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한반도의 평화는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화를 향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간직하자.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가 아닌 것을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한 화해와 일치의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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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