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달콤한 슬픔에 자비를 / 성슬기 기자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06-23 수정일 2020-06-23 발행일 2020-06-28 제 320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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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음소거가 되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좋은 게 좋은’ 무책임함이나 ‘편한 게 편한’ 개인주의에 지쳐 스스로 삶의 배경이 돼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소리가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순간,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런 순간 말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 이런 유혹(안이함)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난 6월 1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진행된 올해 서울대교구 사제 성화의 날 행사는 온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들이 잔뜩 모인 자리였다. 각자 삶의 자리에 선 그들의 모습은 가슴 충만한 감동을 줬다. 노 신부의 여유로우면서도 편안한 미소와 그를 부축하는 후배 주교, 그리고 선배 사제들의 말에 어린 아이처럼 두 손 모아 듣던 한 주교의 자세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주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주님의 따듯한 자비다. 하지만 교황이 비판한 것처럼 세상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했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우리는 변화를 시도하기를 주저한다. 아니 더 나아가 안이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37항)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기’(시편 136[135]) 때문이다. 교황은 지난해 8월 사제들의 수호성인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선종 16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사제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구절을 무려 11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했다.

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