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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조선생님, 우리 친구가 됩시다”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입력일 2020-06-16 수정일 2020-06-16 발행일 2020-06-21 제 320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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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썼던 칼럼 ‘40주년 5·18 부끄러운 우리 교회’가 게재된 뒤 한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조OO라는 분으로, 보낸 편지는 A4용지 3장의 장문이었다. 조선생은 퇴직을 했으며 지금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5년째 교회일에 무료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일에 종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이 간결한데다 문법에 어긋난 데가 없었다.

조선생은 이렇게 반듯한 문장으로 시종 나에게 거세게 항의를 했다. “교수님의 글을 읽고 도저히 참기 어려워 제 생각을 몇 자 적는다”면서.

참고로 지난달 칼럼의 요지를 보자면, “40주년을 맞은 올해 5·18에는 염수정 추기경 등 대부분의 교구장들께서 광주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등 우리 교회가 정권이 바뀌기 전과는 다르게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세월호 사고 직후에도 서울대교구 등 각 교구가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또 “일제 강점기 때도 정치적 중립이라는 궤변을 내세우며 신자들의 독립운동을 방해했으며 심지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참배를 종용했다”고 밝히고 “당대의 진실과 고통을 외면하다 세월이 지나면 대세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게 관행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조선생은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고,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의견부터 개진했다. 그는 “5·18 유족들과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유공자 가족들은 경제적 지원과 각종 시험 가산점 부여 등 많은 혜택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가족들을 잃은 세월호 유족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다른 사고들에 비교해 그들은 많은 보상과 위로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비해 천안함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대우와 추모식은 상대적으로 매우 초라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조선생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진보 진영 간에 논쟁의 초점이 돼온 여러 가지 일들을 거론하면서 비판과 분노를 표출했다. 조선생은 거의 국정전반에 걸친 수많은 사례들과 관련 인사들을 거론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칼럼을 통해 언급한 것은 5·18과 세월호 두 가지뿐이다. 조선생이 언급하지 않은 일제강점기 때의 교회태도까지 모두 세 가지. 그러므로 조선생이 나에게 따질 일도 아니고 내가 답변할 거리도 아니다. 왜 내가 그토록 궁지로 몰려야하는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일단 내가 언급한 것에 대해선 말씀을 드려야겠다. 5·18과 세월호, 일제강점기 때의 교회태도 등에 대해 나는 주로 확인된 사실관계를 제시했다. 내 추측이나 소문을 쓴 것이 아니다. 또 거기에 대한 내 의견은 따로 밝혔다.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을 구분하라는 저널리즘의 수칙은 지킨 셈이다. 그러므로 조선생이 사실관계에 대해 문제를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견’에 대해 말하자면 조선생과 나는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조선생은 향후 5·18관련 추가입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이지만 나는 찬성한다. 또 조선생은 교회가 정치 집단인지 혼돈이 올 정도로 정치와 사회에 너무 관여한다는 인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회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가톨릭 사회교리서’는 교회가 각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에 관련된 정치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천주교 신앙이란 개인의 복만 다루는 민원창구가 아닌 것이다.

그밖에 조선생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서로 의견을 비교한다면 많은 이견이 나올 것 같다. 어떻게 하나. 더 다툴 일이 아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된다. 꽃밭의 많은 꽃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로 어우러져 있을 때 아름답듯이, 이 세상 또한 그런 것 같다. 6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새해결심 목록 10가지’란걸 제시하신 적이 있는데 그중 ‘생각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시오’라는 항목이 있었다. 나는 처음엔 당황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주문하실까’하고 한동안 난감해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한 것임은 나중에 알았다

조선생님, 우리 친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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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