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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6ㆍ15를 기억하기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0-06-16 수정일 2020-06-16 발행일 2020-06-21 제 320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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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물끄러미 보다가 6월 15일이라는 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득 역사 속 6월 15일에 있었던 3개의 사건과 인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건과 인물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분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 만나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했던 2000년 6월 15일을 떠올리실 겁니다. 당시 두 정상이 합의한 6ㆍ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견인차가 됐습니다.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가 비로소 하나가 됐던 순간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스러운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순간과 달리 역사 속에서는 전쟁의 아픔이 있기도 했습니다. 바로 1999년 6월 15일이 그렇습니다.

2000년 6월 15일이 화해와 협력의 시작이었다면 1999년 6월 15일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에서 남북 해군 간 교전으로 인해 1차 연평해전이 있던 날입니다. 당시의 교전으로 우리 측은 9명의 경상자가 생겼고 북측은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2002년 6월 29일의 2차 연평해전, 그리고 2009년 11월 10일의 서해교전 등으로 서해 북방한계선 지역에서의 상호 분쟁이 격화되기 시작했던 첫 시작이기도 하지요. 2000년 6월 15일로부터 불과 1년 전에 이러한 분쟁이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정세 변화를 잘 관리하지 못할 경우 극단의 형태로 우리 상황이 악화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할 마지막 6월 15일은 언제일까요? 저는 신앙을 믿는 여러분들이 앞선 두 개의 날들보다 바로 이 날을 먼저 기억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 날은 1861년 6월 15일입니다. 우리에게 땀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 그리고 가경자로 알려져 있는 최양업 신부님의 순교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신학생의 길을 떠났으며 귀국 후에는 12년 동안 조선 8도 중 5개도에 산재해 있던 120여 개의 교우촌과 6000여 신자들을 돌봤던 분. 해마다 7000리(2800㎞) 길을 다니시다 결국 40세의 나이에 장티푸스와 과로로 생을 마치셨던 순교자.

역사를 돌아보면 같은 6월 15일이지만 기억해야 할 사건과 인물들이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갈등이, 어떤 때는 화해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땀 흘려 다니셨던 한 분의 마지막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저는 이런 다짐을 해 보곤 합니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이 길이 비록 힘이 들지만 최양업 신부님이 하셨던 것처럼 성심성의껏 땀 흘려 화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전파해 보자는 다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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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