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를 아십니까? / 임미정 수녀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입력일 2020-06-09 수정일 2020-06-10 발행일 2020-06-14 제 319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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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6시 내고향’이 중반쯤 돼 가면 한 집, 두 집 불이 꺼지고, 띄엄띄엄 있는 가로등 불빛만이 고즈넉한 마을을 비춥니다. 이전에 제가 소임하던 마을의 해질녘 모습입니다. 울산시 울주군에 속한 이 마을은 울산 석유화학공단과 온산 중화학공업단지 사이에 있으며 90년대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진 칸칸이 월세방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도 떠나고, 경제 사정이 아주 어려운 독거어르신, 장애우, 신용불량 등 주거 빈곤층이 싼 월세를 찾아 들어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점점 낡은 집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중소공장들이 들어서 다소 삭막하기도 하지만, 집들 사이 작은 텃밭에서 나누는 어르신들의 입담 소리가 정겨움을 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주민들도 잘 모르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인근 공단지대에서 매일같이 뿜어 나오는 온실가스로 대기질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이 마을 30㎞ 반경 이내에는 고리/신고리 원전과 경주 월성/신월성 원전, 전체 18기(2기-영구정지, 3기-정비/건설, 2기-건설예정) 중 11기가 현재 가동중에 있어 핵사고의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전기사용량이 거의 없는 이 지역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보낼 고압의 전기생산을 위해 핵방사능의 위험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입니다.(*원전위치 반경 30㎞이내 구역/방사선비상계획구역: 원전사고 발생 시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그 무게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위험구역)

현재 제가 거주하는 수녀원은 서울에서도 가장 중심가인 종로에 위치하고 있어, 주위 대형건물들과 가로등이 밤새 켜져 있고, 그 빛이 아주 밝아 심지어 방불을 켜지 않고도 옆 건물의 빛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이곳은 핵의 위험으로부터 300㎞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저는 1년 사이 너무나 상반된 곳에서 생활하면서 ‘에너지-전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쿄대에서 핵화학을 전공하고 일본원자력산업체와 도쿄대 교수로 재임했던 일본 반핵운동의 선구자, 다카기 진자부로(1938~2000) 선생은 핵폐기물(핵쓰레기)이 지구의 한계적 시간 안에는 처리 불가능함을 일컬으며,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다카기 선생은 또한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을 적극적으로 독해한 논문, ‘성경은 핵을 예견한 것인가’(1993)를 발표하면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구별하지 못하고 핵에너지 사용에 도달한 인간욕망의 ‘팽창주의’를 알렸습니다.

“원자력이라는 것은 본래의 지상세계에 이물질을 도입하여 원자핵의 안정을 파괴하고 그것을 통해서 천문학적인 힘을 얻으려고 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지상 생명세계의 원리와는 양립하지 않으며 그 비화해적 충돌을 우리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체르노빌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본다면 핵개발은 글자 그대로 프로메테우스처럼 하늘의 불을 훔치는 행위이며 금단의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핵발전소는 10만년이상 핵폐기물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세대 이기주의의 전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2019년 일본방문 중, “인간은 신이 정해놓은 자연규칙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원전’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간탐욕에 의한 자멸의 상징인 ‘바벨탑’에 비유하셨고 또한 작년 11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과의 만남에서 “우리들은 미래세대에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시며 탈핵의 입장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 글이 지면으로 나갈 즈음에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왔을 텐데요. 6월 5~6일 울산에서는 ‘월성원전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가 있습니다. 울산북구는 월성원전에서 불과 7㎞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도 원전 소재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건설하겠다고 하여 주민들 스스로 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울산북구 뿐 아니라 우리 마을을 포함한 울산전역이 월성원전의 핵위험지역에 포함되어 있어 이번 결과에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전기사용이 거의 없는 마을 어르신들을 대신하여 호소 드립니다.

“전기사용량이 많은 서울시민분들, 월성 핵쓰레기장 건설 중단에 다함께 동참해주시길 간절히 요청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