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29회 무주택자의 날, ‘쫓겨나는 이들의 만민공동회’ 개최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6-09 수정일 2020-06-09 발행일 2020-06-14 제 319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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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땅, 쫓겨나지 않을 권리 모두에게 보장하라”
철거민과 쪽방 주민 등 참석
인간 기본권인 ‘주거권’ 강조
세입자 보호법 문제 등 현안
21대 국회의원에 개선 요청

6월 3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제29회 무주택자의 날 행사에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충열 신부(앞줄 맨 왼쪽)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90년 4월, 전월세 폭등으로 이사 갈 방을 구하지 못한 일가족 4명이 동반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해 봄에는 같은 이유로 17명의 세입자들이 목숨을 끊었다.

2년 뒤,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고(故) 정일우 신부, 고(故) 제정구(바오로) 국회의원은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함께 6월 3일을 ‘무주택자의 날’로 선포했다. 도시개발정책으로 인한 강제철거, 무주택자의 기본권 박탈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집 없는 사람들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점을 개탄하면서 빈곤사회연대와 주거네트워크,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는 제29회 무주택자의 날 행사를 6월 3일 개최했다. 이들은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난하고 쫓겨난 이들의 목소리를 제21대 국회에 전달했다.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인들과 철거민들, 쪽방 주민들, 비닐하우스 주민들이 참석해 직접 목소리를 내며 ‘쫓겨나는 이들의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우유 곽으로 집을 만들어 한데 모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는 발언은 나충열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가 맡았다. 나 신부는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누구도 호화주택을 짓거나 가질 권리가 없다”고 말한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를 소개하며 “주거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모든 이를 위한 최소한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의원들에게 세입자들의 권리 보장과 비적정주거 개선을 위해 발로 뛰어줄 것을 당부했다.

철거민과 쪽방 주민,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인들은 불합리하고 불안정한 거주 문제를 토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영등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유정씨는 “10년간 종업원으로 근무하다 직접 장사를 하게 됐는데, 건물주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어렵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여건상 영업이 부진해 어려움을 겪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사채 빚까지 내어가며 장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건물주에게서 한 달 만에 점포를 비우라는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주변에 착한 건물주들이 있는 반면,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떨고 사채 빚에 떨고 강제집행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청춘을 다 바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상인들은 목숨을 담보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3대 부동산 재벌인 영등포 건물주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며 “열심히 장사한 죄밖에 없다”고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다.

참석자들은 ‘세입자 권리 강화! 21대 국회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하라!’, ‘아무도 쫓아내지 마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하라!’, ‘모두의 주거권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국회에 외쳤다.

이들은 의견을 모아 ‘주거는 인권이다. 평등한 땅, 쫓겨나지 않는 도시를 모두에게 보장하라’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행사말미에는 각자 우유 곽으로 집을 만들어 한데 모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주거권이 모두의 기본 권리임을 드러냈다.

행사를 진행한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1990년 봄 세입자들의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무주택자들의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며 “우리들의 외침이 21대 국회에 꼭 전달돼 ‘평등한 땅, 쫓겨나지 않는 도시’가 도래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