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제 성화의 날 특별기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입력일 2020-06-09 수정일 2020-06-09 발행일 2020-06-14 제 3199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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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사랑과 복음의 기쁨 드러내는 삶을 삽시다”

서울대교구 제공

사제 성화의 날(6월 19일)을 맞아 올해 금경축을 맞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한국교회 사제들에게 사제 생활의 길잡이가 될 특별기고를 가톨릭신문에 보내 왔다. 염 추기경의 특별기고 전문을 소개한다.

■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아 형제 사제 여러분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으로 우리는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혼란의 시간 속에서 인류는 모두가 연약하고 속수무책인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3월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을 주례하며 하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불가능이 없다고 자만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익을 탐하고, 전 세계적 전쟁이나 불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도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이나 중병이 든 지구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련의 시간을 선택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선택하고,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가려내는 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스승이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떠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아, 세상의 풍랑에 맞서 복음 선포의 맡겨진 사명을 더욱 훌륭히 수행할 수 있기를 청하고 다짐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사제로 불림을 받은 것은 하느님 백성의 선익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사목 현장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하도록 합시다. 특히 각자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육체적,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을 교회와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카 5,16)

“기도는 하느님을 항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신앙 해설」, 「가톨릭교회 교리서」 2590항) 이런 기도 생활의 모범이요 스승은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는 예수님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분은 기도로써 성부와의 일치 안에 머무르셨고, 기도의 힘으로 성부의 뜻을 실천하셨습니다.

기도의 모범이며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아 기도하고 간청합시다. 무엇보다도 성무일도를 성실하게 바치고, 성시간을 통해 예수 성심을 더욱 깊이 묵상합시다. 또한 신자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 정신에 따라 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고민과 부담을 안고 사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날마다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가까이 지낸다면, 복음의 기쁨을 누리면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개인적으로 이번 사제 성화의 날은 제가 사제가 된 지 50년 되는 해라 더욱 뜻깊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사제로 살게 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사제품을 받을 때 상본에 적어 넣은 이 묵시록의 말씀을 저는 주교 사목표어로도 새기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많은 저이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 사제들과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들의 아버지로, 맏형으로 신부님들 한 분 한 분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격려하고 이끌어야 함에도 인간적인 부족함으로 그러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구 공동체를 위해, 신자들을 위해, 그리고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신부님들과 신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저도 신부님들과, 신자들을 위해 늘 기도합니다.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오니 저희를 굽어 살피소서.

저희는 이미 주님의 백성이오니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나이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오늘 저희를 주님의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예수 성심,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아멘.

2016년 2월 5일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에서 서품 대상자들이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