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아내 찬스 / 이미영

이미영(마리아 막달레나) 수필가
입력일 2020-06-02 수정일 2020-06-02 발행일 2020-06-07 제 319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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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신앙의 부모가 돼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남편 베드로는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서 대자를 많이 둔 편이지만, 나는 신앙생활이 너무 보잘것없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는 쪽이었다. 남편은 가끔 대자 부부를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성지 순례를 함께 가는 등 나름 끈끈한 가족애를 다지는 데 비해, 나는 그리 많지 않은 대녀들에게조차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는 부족한 대모이다.

오랜만에 대녀 데레사가 전화를 했다. 나는 “혹시 아녜스가 결혼하냐”고 물었더니 “대모님 저희 집에 모니터 설치하셨어요?”라며 웃었다. 데레사가 과년한 딸아이 결혼을 간절히 바랐던 마음을 아는지라 나도 이심전심으로 늘 마음이 쓰였는데 반갑고 기뻤다. 대자 요셉씨는 대부 베드로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한 번도 주례를 선 경험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딸인 아녜스가 간곡히 원한다며 거듭 청했다. 아녜스는 어릴 때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늘 양보하고 배려심이 있는 고운 아이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청년 성가대에서 봉사를 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요셉씨 부부 역시 성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면서 무엇보다 사랑이 깊은 따뜻한 성가정을 꾸렸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워 이제 자신의 거들짝인 안드레아를 만나서 가정을 이룬다니 대견하다.

남편은 주례 승낙을 하고 난 후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 듯했다. 주례사는 어떻게 써야 할지 그날 하객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고 좋은 분위기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남편에게 ‘아내 찬스’가 되어준 적이 가끔 있었다. 성당 총회장을 맡았을 때 신부님 부임식 날과 영명 축일 등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이공계를 전공한 그가 가장 아킬레스건이라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내게 도움을 청했다. 부부 공동 글쓰기로 완성된 원고를 미사 시간에 낭독한 후에 본당 신부님과 신자 분들께서 글 내용이 참 좋았다는 칭찬을 듣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절반의 수고를 한 나도 뿌듯했다. 그 또한 주님께서 내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귀한 달란트를 주셨으니 가능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머리를 맞대고 하느님이 맺어준 신앙의 손녀 아녜스 결혼식 축하 글을 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신앙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부부가 지켜야 할 서로 간의 예의를 베드로 할아버지가 쓰기로 했다. 부부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서 대들보를 세우고 완공을 하는 얘기를 할아버지가 했다면, 막달레나 할머니는 그 집 울타리에다 두 그루 나무 이야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삼나무는 의외로 뿌리가 얕은데도 2700년 동안 태풍을 견디며 끄떡없이 살아 있다고 한다. 그 삼나무의 생존 비밀은 주변의 다른 나무들과 뿌리를 단단히 얽어매어 서로 기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몇 해 전 해남 대흥사에서 본 느티나무 연리지는 다른 뿌리의 두 나무 가지가 한몸이 되어 하늘로 향해 있었다. 이 나무들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두 사람이 삼나무처럼 가족이나 이웃들과도 잘 어우러져서 언제나 어깨를 내어주는 지지대 같은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고…. 그리고 두 인격체로 만난 사람이 연리지처럼 서로 보듬고 늘 한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며 아내 찬스 글쓰기를 마무리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영(마리아 막달레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