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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8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6-02 수정일 2020-06-02 발행일 2020-06-07 제 319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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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에 부임하기 전, 사실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이주사목 신부가 되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리 위에는 이제까지 없던 그 무엇이 ‘뿅’하고 생겨났다. 그 무엇은 바로 ‘안테나’이다.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 일명 관심 안테나는 두 가지 경우에 생겨난다. 하나는 내가 일부러 관심을 두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에 의해 저절로 관심을 갖는 경우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두 번째에 이 관심 안테나가 저절로 생겨난다. 쉬운 예로, ‘내 남편이 어디 군부대 출신인지’ 알고 있는 부인은 적다. 알고 있다면 그건 대단한 사랑이다. 그러나 내 자녀가 입대를 앞두면 많은 엄마는 군대 전문가가 된다. 어디 보직이 편하고 어디 부대를 가는 것이 안전하며, 한 번도 듣지 않던 국군 방송을 듣고 있다. 그러나 자녀가 제대한 뒤에는 어느새 그 안테나는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니고 있지만, 다음 인사이동 때 다른 사목을 맡게 되면 내 머리 위의 높이 솟아 있던 이주민 안테나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모든 신자 머리 위에는 특별한 안테나가 높이 솟아 있다. 그것은 세례를 받는 순간,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신앙의 안테나’이다. 이 안테나만큼 성능이 좋은 안테나도 없다. 이 안테나만큼 쉽게 구할 수도, 쉽게 구하지도 못하는 안테나도 없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급 안테나라 할지라도 그 위에 온갖 쓰레기 더미가 가득 덮여 있다면 주파수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안테나라 할지라도 깊은 터널에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주파수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

바로 그 쓰레기 더미들인 나의 욕심과 나태함과 무관심을 치워버릴 수 있을 때, 그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오려고 부단히 애를 쓸 때 그 안테나는 본래의 성능을 다할 수 있다. 그 안테나가 성능을 다하는 순간, 우리가 라디오 채널이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만큼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당신의 음성과 은총을 내 머리 위에 있는 신앙의 안테나를 통해 나에게 전달해주신다.

터널 속 안테나. 누구도 자신이 터널을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나올 수 있는 터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터널을 들어간다. 그런데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내 머리 위 안테나의 쓰레기 더미들을 치워도 터널 안에 있으면 그 안테나는 주파수를 잡을 수 없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순간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깊은 터널이라 할지라도 내가 당신의 음성을 간절히 바랄 때, 나의 메마르고 갈라진 손을 붙잡아 주신다.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은 여전하지만 나는 이 깊숙한 터널에서 당신의 음성을 듣는다. 그것이 알코올중독자들이 경험하는 안테나이다.

이중교 신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