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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아빠! 너무 무서워…”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0-05-26 수정일 2020-05-26 발행일 2020-05-31 제 319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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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너무 무서워. 친구 미경이가 얼마 전 사랑니를 뺐는데 무척 아팠대요. 얼굴은 퉁퉁 붓고 3일 동안 끙끙 앓았다는데…. 나 어떻게 해. 아빠가 기도해 줘요.” 지난 3월말, 대학생 딸은 병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계속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비뚤어진 사랑니를 이번에는 꼭 빼야겠기에 “하느님께서 지켜 주실 거야”라고 달래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두려움!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사람이 가지는 일곱 가지 감정으로 ‘기쁨(喜)·성냄(怒)·근심(憂)·두려움(懼)·사랑(愛)·미움(憎)·욕심(欲)’을 들었습니다. 이렇듯 두려운 감정은 소심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랄 수 있겠지요. 어쩌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살면서 수없이 많은 두려움과 마주했습니다. 가장 두려움을 느꼈던 때는 공수교육을 받을 때였지요. 1985년 벚꽃이 만개한 봄날, 지상교육을 마치고 실제 강하를 하게 됐습니다. 서울공항으로 이동해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며 온갖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혹시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어쩌지. 지난번 기수에도 낙하산에 문제가 생겨 순직한 장병이 있었다는데,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그때 신자는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하느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기도와 두려움과 망상이 서로 뒤엉켜 있을 때 항공기에 탑승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C-123 수송기의 엔진소리, 교관의 다그치는 목소리, 낙하 장비가 부딪히는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앞뒤로 주 낙하산과 예비 낙하산을 메고 떨리는 마음으로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습니다. 항공기는 이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낙하장소인 미사리 상공에 도착했습니다.

교관의 수신호에 따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지요. 어느 순간 동료들이 앞에서부터 우르르 비행기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도 밀려서 항공기 문 앞에 서자, 비행기 속도 때문인지 허공으로 몸이 빨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요. 어깨가 덜컹하며 몸이 위로 약간 솟구쳤습니다. 하늘을 보자 국방색 낙하산이 동그랗게 펴졌습니다. 그제야 ‘아 살았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두려움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지요.

딸은 한 시간여의 고통 끝에 사랑니 두 개를 뽑았습니다. “아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한 개는 금방 뽑았는데, 한 개는 좀 시간이 걸렸네요”라면서 생글거리며 웃었습니다. “엘리사벳! 역시 주님뿐이지?”라고 답하며 엄지척을 했습니다. 딸은 시험 등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 부부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기야 신자가 아니었을 때도 기도를 했는데, 하느님을 믿는 지금이야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 아멘!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