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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저희가 화해하듯이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05-26 수정일 2020-05-26 발행일 2020-05-31 제 319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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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6·25 전쟁은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가 너무 큰 전쟁이었다. 긴 전쟁 중에 도시와 마을의 점령 세력이 계속해서 바뀌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인천상륙 작전 후 서울수복 때에도 다수의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북한군 철수 전날에만 서울에서 1000여 명의 사람이 처형됐다. 그리고 다른 도시와 마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억울한 죽음과 증오가 만연했던 전쟁에서 교회 자신도 참혹한 희생을 치른 피해자였다. 6·25 전쟁 발발을 전후해 체포된 성직자와 수도자는 150명으로 집계되는데, 이 가운데 총 9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신부들은 본당과 신자들을 지키려고 피난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신자들은 수녀들이나 아직 어린 신학생들까지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해야만 했고, 이러한 현실은 교회 스스로가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증오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화해에 관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적대는 정당하게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학살을 자행한 것은 북한군이나 좌익세력만이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측의 공권력이나 우익세력에 의해서도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전쟁 초기부터 남한의 경찰은 공산주의 세력을 약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좌익 인사와 공산주의 ‘협력자’들을 체포했다. 기록에 따르면, 6월 25일에서 7월 14일 사이에만 최소 1200명의 공산주의 혐의자가 적절한 재판 없이 사형을 당했다. 전쟁 발발 이전부터 서로를 살해했던 폭력과 증오가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 기간에 본격화된 것이다. 많은 경우에 좌우 이념과도 상관없는 복수가 자행됐다.

화해를 통한 평화라는 당위를 알면서도, 우리 인간은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대면할 때 그 화해가 절대 쉽지 않다는 한계를 알고 있다. 잔인성과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이른 폭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참조) 하지만 복음을 믿는 신앙인은 참회와 화해를 통한 진정한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자녀라는 선언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마태 5,9 참조) 아직 정전상태로 군사적 대결이 상존하는 이 땅에서 ‘적’과의 화해는 너무 어려운 숙제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는 자녀들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는 오는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는 전국 모든 교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특별한 미사가 봉헌된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를 믿는 우리 교회 전체가 진심으로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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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