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5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5-12 수정일 2020-05-12 발행일 2020-05-17 제 319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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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본당의 보좌로 있을 당시, 친했던 청년들 몇 명이 돈을 모아서 묵주반지를 축일 선물로 주었다. 또한 친한 부부가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 신부를 생각해서 꽤 좋은 시계를 선물로 주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두 번 모두 선물을 받지 않았다. 결코 선물을 거절하는 성격이거나 반지와 시계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식품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선물을 해주었던 남자 청년과 부부의 남편에게 대신 착용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 반지와 시계를 볼 때마다 이 부족한 사제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주셨던 묵주반지가 있었고, 신학생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기에 당시 내 손에는 항상 묵주반지와 손목시계가 착용돼 있었다.

반지와 시계를 항상 착용했던 내게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그 속삭임은 부제품을 받기 전, 주일 미사에 앉아 있던 이름 모르는 어떤 형제님의 중얼거림이었다.

‘이야. 신부님 시계 정말 멋지네.’

미사에서 가장 엄숙한 성체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그는 예수님의 몸이 아닌 사제의 시계에 집중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이나 잘못도 아니다. 메탈 시계를 착용했던 신부님의 시계가 번쩍였고, 시계를 착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회의 규정도 없다. 단지 번쩍였던 그 시계를 바라보며 그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속삭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태어난 해에 유아세례를 받은 뒤 복사단과 예비신학생을 거쳐 바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수없이 미사를 봉헌했지만 한 번도 신부님의 묵주반지나 손목시계가 분심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자꾸 예수님의 몸과 피가 아닌 신부님들의 반지와 시계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때 결심했다. 부족한 사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이것을 해야겠다. 신자분들이 예수님의 몸과 피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사제로 살아가는 동안 손에서 반지와 시계를 빼야지.

간절함. 많은 사제가 매 미사를 내 인생의 마지막 미사로 생각하고 봉헌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점점 무디어질 때, 때때로 의무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미사가 우리 부모님의 장례 미사라면….’

어느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본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눈빛. 그러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시인하는 눈빛. 그들 역시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할 수 없어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간절함을.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